
우리 역사에서 권력을 놓치고 잘 된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친일파는 재벌과 장차관을 하는 반면, 독립군은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연명한다고. 그러니 촌스럽게 자존심이니 정의니 하는 거 버리자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틀린 말 하나 없다. 신참이 감동한다. 역사 앞에서 인상쓰지 말자. 역사 앞에서 환하게 웃자.
'연애의 목적'과 '우아한 세계', '관상'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은 역사를 이야기한다. 군사독재 이후 소위 87년 체제라 불리는 민주화 30년간의 현대사를 정치검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권력에 줄을 대고 그 옆에 서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물들에게 '민주'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할 만큼 영민한 그들이 공부한 역사 교과서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독을 나무라기에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 남루하기 그지없다.
영화 속 한강식 검사는 권력의 옆에서 그들을 대신해 칼을 휘두르며 보잘 것 없는 권력의 부스러기들을 만끽한다. 그리고 범죄조직 들개파의 두목 김흥식은 한강식 옆에서 그를 대신해 주먹을 휘두르며 밤의 권력을 누린다. 그리고 또 그의 발밑에서 배를 채우는 들개들. 권력의 하청 구조이며, 정치검사에 대한 조롱이다.
'더 킹'은 이 견고한 고리를 끊는 길은, 남루한 역사를 리셋하는 길은 '왕'을 바꾸는 도리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왕이란 대통령이나 힘 있는 정치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권재민이라는 원칙에 입각한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 된다. 언제 속임수를 쓰는지, 언제 딴짓을 하는지. 한시도 긴장을 풀면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백발백중 당한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압축하다 보니 내레이션과 파노라마의 비중이 높아져 영화적 재미가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현명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한번쯤 봐야 할 교과서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