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묵해서가 아니다. 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잠근 방문처럼 그녀의 입술에 걸린 빗장이 말들을 가두었다. 세상은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캠코더에 의해서 소녀의 마음속에 고인다. 골목의 소란스러움이 소녀의 캠코더에 담긴다. 여자의 고함과 악다구니가 소녀의 고요함을 만난다. 마치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듯이.
김소연 감독의 '문영'은 짧고 담백하다. 말을 못한다는 장애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경계와 분노를 가슴에 품은 소녀 문영과 밝고 솔직하지만 나름의 상처와 혼란을 지닌 희수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조보다는 그들이 마음을 나누는 순간의 포착이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다.
영화는 퀴어적인 결말로 흘러가지만 그것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단순히 성장담이나 퀴어라는 말로 이 영화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것은 문영이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언어가 아니라 캠코더에 세상을 담아낸다. 화면은 자주 흔들리고 어지럽다.
그러나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대사일 것이다. 혼란과 상처에 지쳐 옹송크린 마음이 관객들을 향해 내뱉는 말일지 모른다. 캠코더의 거친 영상이 다소 평면적인 이 영화에 질감을 부여하는 이유일 것이다.
문영 역의 김태리가 보여주는 맑고도 서늘한 눈빛은 그녀가 단순히 운 좋은 신데렐라가 아님을 말해준다. '아가씨'의 숙희 이전에 맡은 첫 주연작이기에 그녀의 연기가 보여주는 잔잔한 긴장감과 폭발력은 배우 김태리에 대한 신뢰감을 더욱 높인다.
어떤 사람은 김태리라는 배우에게서 '아가씨'의 관능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도 그녀의 앙다문 입술과 신경질적으로 수화를 내뱉는 섬세한 손을 먼저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정현 역시 수다스럽고 마냥 밝은 듯하지만 속에 상처를 안고 있는 희수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