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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그곳은 한 때 연쇄살인 사건의 아이콘이었다. 개발의 열풍으로 골프장과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드넓은 논과 밭 어딘가에는 미제로 남은 사건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곳으로 한 사내가 흘러든다.

그는 강남에 개업을 했다 실패한 후 이곳에 페이 닥터로 취직했다.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졸고 있는 그의 꿈은 깊은 무의식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공포와 불안이 위태롭게 찰랑인다.

이수연 감독의 '해빙'은 불안에 대한 영화다. 동시에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공존하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교차점에 승훈(조진웅)이 존재한다. 실패한 개업의인 그는 강남이라는, 들끓는 욕망의 용광로에 흡수되지 못하고 탈락한 폐기물 같은 존재이다.

욕망이 좌절된 그의 허약한 내면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은 불안과 공포이다.

수면내시경 중에 정노인의 잠꼬대 같은 고백을 듣는 순간, 정육식당 주방에서 바닥에 구르는 머리를 보는 순간 불안은 고개를 쳐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 도시로 들어오며 차창에 기대 꾼 꿈속에서부터 불안은 이미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끝내 해결되지 못한 연쇄살인사건의 얼룩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지고 컴컴해지면 마을에선 누가 없어져도 아무도 몰랐던" 시절의 전근대적 야만의 기억과 신축 아파트로 상징되는 근대적 자본의 욕망이 교차할 때 발생하는 스파크 같은 것인지 모른다.

'해빙'의 사운드는 과잉되고 편집은 불연속적이다. 꿈과 현실이 혼재하고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승훈이라는 인물의 내면적 불안에 초점을 맞춘 이 불균질은 교묘하게 엮이며 관객을 승훈이 겪는 불안 속으로 끌어들인다.

해소가 지연되면서 지속된 불안과 긴장에 다소 지치기도 하지만, 후반의 반전을 보고난 뒤에야 이전 장면에 대한 반추와 복기를 통해 맞춰진 퍼즐은 승훈이라는 문제적 개인의 내면을 벗어나 일상에 깃든 이기심과 욕망, 불신을 폭로한다.

"겨울은 아주 춥고 얼음은 아주 두꺼웠다"는 정노인의 말처럼 우리는 엄혹한 현실의 발판 위에서 음습한 내면을 깊숙이 감춘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