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투병·남편 사업실패 어려운 시절
도움 준 친구들 하늘로… 나눔의 삶 다짐
50명 단원과 소외층 80가구 밑반찬 전달
군부대·건설사 후원 주택개보수 도움도
정씨는 부천에서 남편과 함께 학원운영과 부동산개발 사업을 병행하며 별 어려움 없이 4남매를 키웠다. 각종 모임을 통해 '남들 다 하니까' 하는 봉사활동도 했다. 말이 봉사지, 가끔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잡담하며 시간을 보내는 취미생활에 가까웠다.
하지만 봉사도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된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작은 품팔이가 누군가에겐 절박한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수년간 해온 '소외계층 반찬 봉사'가 겨우 '취미'의 영역을 벗어날 무렵,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엎친데 덮쳐 승승장구하던 남편의 사업도 쫄딱 망했다.
절망의 끝에서 정씨가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오랜 친구 2명이 건넨 도움의 손길 덕분이었다. "먹고 살기도 어렵던 친구가 생활비에 보태라며 선뜻 700만원을 들고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돈 될 수 있는 건 모두 처분해 마련해온 돈이었어요."
천신만고 암 투병을 이겨내고 사업도 재기했지만, 그 사이 새 삶의 희망을 줬던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병 등으로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평생 갚지 못할 빚을 남긴 낙담의 시간 끝에 정 씨가 찾아낸 보은의 답이 바로 한때 허영심이자 취미였다가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됐던 '봉사'였다.
부천과 수원 등지에서 19년 동안 '내공'을 쌓은 소외계층 반찬 봉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초 지인·학생 등 50명으로 꾸린 '화성사랑봉사단'이 제공하는 밑반찬과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소외계층만 80여 가구에 달한다. 그들과 부대끼는 동안 빗물이 새고 쓰레기가 넘쳐나는 집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주택 개보수에도 손을 댔다. " 왜 게으른 거지들을 돕느냐"며 험담하는 이웃들도 있었지만, 인근 군부대가 일손을 거들었고 한 건설사는 수백만원 어치 자재를 지원했다.
정씨의 봉사단은 단 한 푼의 회비도 걷지 않는다. 월 100만원이 넘는 반찬값과 운영비는 남편 김영식(53)씨 몫이고, 명절때마다 지역 토건업체 권대영 사장이 몰래 건네는 금일봉이 후원금의 전부다. 정씨가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청소업도 처음부터 그 수익의 쓰임과 인력운용의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
자리가 잡히는 대로 소외계층 노인들이 그곳에 취직해 경제활동을 한다. 누군가의 소소한 도움이 삶의 전부일 수도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란 사실을 정 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화성/배상록기자 bsr@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