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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장르문학은 즐거움을 주며,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판타지(fantasy)의 본질은 펀타지(funtasy)이며, '대리경험'과 '감정이입'과 '작중인물과의 동일화'와 '허구의 약정' 같은 공모를 통해 우리는 불만족스럽거나 권태로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A. H. 마슬로우(1908~1970)가 말한 인간 욕구의 5단계나 명리학이 말하는 재물욕 · 출세욕 · 명예욕 같은 인비식재관(印比食財官)도 결국 인간의 욕망, 곧 마음의 만족을 얻으려는 활동(혹은 성품)을 뜻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의 '뇌'(2001)도 궁극의 쾌락과 만족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음모를 파헤친 미스터리다. 장르문학이든 명리학이든 종교적 수행이든 뭐든 뇌의 만족, 또는 마음의 만족을 얻으려는 행위이며 형식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로 수렴된다.

그러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뇌과학 · 심리학 · 명상과학(contemplative science)이 말하듯 모든 정신적 활동과 과정이 "뇌의 기능 또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인간의 정신 작용과 관련하여 뇌과학과 심리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선서(禪書)들은 우리의 본래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하며 두렷하다고 한다. 마음을 본다는 견성과 마음을 기른다는 솔성도 따지고 보면 본래의 마음을 알고 이를 회복하자는 뜻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어디에 있으며, 어떠한가. 우선 분별이 일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바라보자. 그 마음과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근거도 실체도 없고 알 수 없는, 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나온다.

상황과 습관에 따라 자꾸 튀어나와서 마치 있는 것처럼 주인 행세하고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것은 실체 없는 허깨비요 관념들이기에 바라보거나 시간이 경과하면 즉시 사라져버린다.

요컨대 마음은 텅 빈 진공같은 비물질적인 공(空)이지만 무존재(無存在)인 것이 아니다. '그것'에서 사상과 스토리와 이념과 온갖 사고 작용들이 끝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을 얻기 위한 여정이다. 행복한 삶을 살자니 이와 같은 생각의 실체와 마음의 원리를 잘 알아 그것을 때와 곳에 맞게 잘 사용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세계를 발견한 고타마 싯다르타(BC 563? ~ BC 483?)나 누구나 마음혁명을 통해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며 비천하고 낮은 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과 해방의 길을 제시해보인 육조 혜능(638~713)이나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들로 우리들을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장르문학이나 모두 방향과 지향이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견강부회일까?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