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영평사격장의 훈련에 의한 주민피해를 설명하고 있는 이길연 포천시 사격장 등 군 관련 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재훈기자 jjh2@kyeongin.com

영평리 주민들 64년간 사격 훈련 '고통'
총탄이 벽 뚫고 날아드는 상황도 겪어
국가 안보 모두 이해… 밤잠 되찾고파


"그동안의 좋지 않았던 기억은 모두 잊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정부를 믿어보겠다."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위치한 미군 훈련장인 영평사격장(Rodriguez live fire complex)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사격 훈련으로 수십 년 동안 피해를 참아왔던 주민들은 한번만 더 국방부의 약속을 믿기로 했다.

지난 2014년 영평사격장 등 군사시설에 의한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조직된 '포천시 사격장 등 군관련 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의 이길연(61) 위원장은 "3개월 동안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기다려 보겠다"고 밝혔다.

이는 범대위가 지난 21일 영평사격장 입구에 차려진 농성천막을 찾은 황인무 국방부 차관이 3개월 안에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물론 이곳 주민들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은 64년이라는 시간동안 사격훈련 여파로 숨진 수십명의 목숨과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든 재산피해를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정부를 믿기로 했다.

이길연 위원장은 "여러 진보단체들이 앞다퉈 영평사격장의 주민피해를 알리기 위한 지원 의사를 밝혀 오지만 주민들은 외부세력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곳 주민들은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사업과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사태처럼 여러 단체와 함께 할 수 있지만 오로지 국가의 안위와 안보를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정부에 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길연 위원장은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경기도연맹 부의장을 맡고 있어 전농은 물론 다른 여러 단체로부터 하루에도 수십통씩 지원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있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 단체들이 영평사격장 문제를 거들고 나설 경우 주민의 요구가 퇴색될 가능성은 물론 자칫 반정부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범대위의 이런 순수한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영평사격장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정부의 차관급 인사가 직접 방문하면서 주민들도 실낱같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길연 위원장은 "이곳 주민들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철수를 원하지도, 사드배치 반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며 "내 집 지붕 위에서 미사일 쏘는 공격헬기와 총탄이 벽을 뚫고 방으로 날아드는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만 막아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3개월 이후부터는 귀청을 때리는 폭발소리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은 가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고요한 밤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포천/김규식·정재훈기자 jjh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