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촬영지 '배다리 헌책방 거리'
알라딘 부천 출점때부터 '이상 기류'
인근 중소규모 서점 "매출 20% 감소"
출판업계도 '신간 수요 잠식' 눈초리
2019년 '제한' 풀릴땐 새책까지 판매
기업형 중고 서점의 대표 주자인 알라딘의 지역 상권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2011년 서울 종로에 1호점을 연 뒤 6년 동안 34개 오프라인 중고 서점을 냈다.
강남, 신촌, 잠실, 합정 등 서울의 주요 상권에서 1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부천점, 수원점, 분당서현점, 일산점 등 7개 오프라인 매장을, 인천에서 계산홈플러스점에 이어 최근 구월점을 개장했다. 전체 매장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기업형 중고 서점의 입점을 반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다양한 책을 시중 판매가격보다 싸게, 그리고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입점하는 것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리는 이유다. 그러나 기업형 중고 서점 입점에 따른 후폭풍도 무시할 수 없다.
헌책방, 중소 서점, 출판사들은 매출 감소가 걱정이지만, 뚜렷한 대책도 없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작은 서점과 '인터넷 공룡'과의 싸움이 가시화됐다.
# "책이 좋은 사람은 헌책방 떠나지 않겠지만…."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인천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인기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공휴일과 주말마다 관광객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낡은 골목에 사람을 끌어모은 것이 헌책방이었다.
헌책방 거리 곳곳에서 열리는 시낭송회, 사진 전시회 등 문화행사는 다채롭다. 배다리 헌책방의 단골인 회사원 김모(38·연수구) 씨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한 달에 2~3번 정도 주말에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책을 구경한다"며 "서가에 꽂힌 낡은 책들을 두루 살피다가, 쉽게 구하기 힘든 '나만의 보물'을 얻는 경험이 즐겁다"고 전했다.
이런 배다리 헌책방들도 기업형 중고 서점의 '인천 러시'를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는 "알라딘이 부천에 왔을 때부터 타격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차를 타고 인천 동구 배다리를 찾아와 헌책을 사던 고객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알라딘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곽현숙 대표는 "책이 좋아서 오시는 분들은 저희 가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손쉽게 (책을 고르고) 잘 차려진 (매장의) 책을 원하는 분들은 (알라딘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알라딘 중고서점 인근 중소 규모 서점의 타격은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 계산점 옆에서 10년간 서협문고를 운영한 오명영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알라딘은 홈플러스 4층에 중고 서점을 개장했는데, 그로 인한 여파가 적지 않았다.
"중고 서점과 새 책을 파는 서점이 아예 분야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알라딘이 들어온 다음부터 매출의 20%가량이 줄었다.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청소년들이 꾸준히 찾는 책이 알라딘에서 2천원에 팔리는 데 정가로 우리 서점에서 사겠는가.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전, 아동도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점협동조합에 나가도 서로 알라딘 이야기를 하는 데 대안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 고물상으로 등록된 기업형 중고 서점… 2019년 이후 새책 판매 시장까지 진입?
서점은 빵집, 자전거포 등과 함께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어 당분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중소기업법상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의 신규 진입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기업형 온라인 서점은 서점이 아닌 고물상으로 등록하는 방식으로 중고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성격이 짙었지만, 지금은 자사의 영업망 확대를 위한 전략으로 매장이 확대되고 있다.
출판사는 기업형 중고 서점 매장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신간 도서 수요를 중고 서점이 잠식하는 문제가 있었다. 기업형 중고 서점이 새책과 다름 없는 헌책을 팔아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문제였다. 신간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면 출판사의 경영난과 함께 '도서 다양성'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출판사는 서점이 한 개 더 늘어날수록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구조인데, 기업형 온라인 서점의 경우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출판유통심의위원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지난 해 6월 '업계 자율 협약' 형식으로 '6개월 미만 신간 중고책 판매 제한'을 권고했다.
하지만 출판업계는 판매 제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는 "신간의 중고책 판매 제한 기간을 1년 또는 1년6개월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출판계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업계는 알라딘이 오프라인 중고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서울 주요 지역에 거점을 확보했고, 인천·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로 유통망 확대에 나설 것이란 예측이다.
알라딘이 인천의 신도시와 아파트 밀집지역 등에 3호점, 4호점을 개설할 것이란 이야기도 돌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유통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정관 북스토리 대표는 2년 뒤를 걱정했다.
"서점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권고 적용 기간은 2019년 2월 말까지다. 권고 기간 연장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2년 뒤에 진입 제한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알라딘은 전국 주요 거점의 중고 서점에서 새책도 취급할 수 있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새책과 헌책을 함께 파는 책방이 등장하는 것이다. 알라딘의 포석은 그런 거다. 소비자는 좋아질 수 있지만, 출판 생태계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다. 파이를 키우고 있는 알라딘을 보는 게 착잡한 이유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