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판교에 센터 개소후 공항·항만과 가까운 송도로 확장·이전
한국 바이오 성장 잠재력은 '스피드' 특유의 속도전으로 우위 가능
선행기간 필요한 제약사 대신 위탁생산·바이오시밀러 개발 등 '전략' 현명
인허가 절차 간소화·규제 완화 절실… 속도 붙으면 바이오 허브로 발돋움
조선 현종 9년, 무신년(戊申年) 때로,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이 '하멜표류기'를 출판하며 유럽에 조선을 최초로 알린 해에 기업의 역사가 시작됐다. 머크는 과학을 기술로 전환해 이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내년(2018년)이면 창립 350주년을 맞는 머크는 혁신(innovation)을 멈추지 않고 성장했다. 66개국에서 임직원 4만여 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갖췄다.
미하엘 그룬트(Michael Grund) 한국 머크 대표이사에게 혁신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머크 본사 프로세스 개발 랩 매니저, 엔지니어링&기술 개발 디렉터, 기능성소재비즈니스(PM-Advanced Technologies Development) 부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
그룬트 대표이사가 밝힌 머크의 성장 비결은 20~30년 단위로 기업을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머크는 지난 2006년에도 큰 변화를 시작했다. 핵심 사업 분야 관련 기업은 인수했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분야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생명과학 산업에서 선두를 다투던 미국기업인 밀리포아와 시그마알드리치를 각각 2010년과 2015년에 인수했고, 제네릭(복제약)과 전자 사업 부분은 통합 등을 통해 정리했다.
"혁신의 적(enemy)은 사업이 잘되는 것입니다. 경영 환경이 좋을 때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머크도 2006년 혁신의 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럴만한 재무적인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략적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룬트 대표에게 혁신을 시작할 '타이밍'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묻자 "자신의 능력과 판단력을 믿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설명해줄 때까지 기다리면 틀리거나 늦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와 함께 미래에는 산업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산업 간 결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다른 비즈니스 사이에서 유망 비즈니스가 탄생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의료(medicine)와 전자기술(electronics)이 결합해 메디트로닉스(meditronics)가 탄생할 수 있다는 거죠. 10년 전만 해도 (머크의 사업 가운데) LCD(액정 표시 장치)가 호황을 이루다 보니 LCD에 집중하고 의약 분야를 매각하라는 조언이 있었고, LCD가 사양길에 들어간 뒤에는 LCD를 매각하고 의약 분야를 키우라고 했는데 이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머크는 바이오 의약 분야와 관련해 대(對)한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머크의 한국 내 바이오 투자 대상지는 인천 송도국제도시다. 그룬트 대표이사는 송도를 바이오 '핫스팟(hot spot)'이라고 표현했다.
머크는 지난해 10월 송도국제도시 IT센터에 국내 바이오제약기업을 대상으로 전문기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M.Lab 협업센터(Collaboration Center)'를 개장했다. 그룬트 대표이사는 "센터에는 앞으로 6개월 동안의 예약이 모두 다 찬 상태로, 송도에 있는 바이오 대기업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바이오 기업에서도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한국머크는 지난해 11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상호발전 및 지원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머크는 송도 내 투자를 확대해 부지를 매입하고, 이곳에 연구·물류서비스·제조와 관련된 시설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4년 전 (경기도) 판교에 센터를 개소한 뒤 성장하는 것을 보고 센터가 송도에 들어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센터를 확장 이전했습니다. 앞으로 2번째 단계로 기업에 공급하는 장비 등을 취급하는 창고, 물류를 여기에 둘 계획입니다. 송도는 공항, 항만과 가까워 이 같은 기능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이후 생산 단계로 나가려고 합니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밟아나갈 계획인데, 잘 맞아떨어질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룬트 대표이사는 한국 바이오 산업 성장의 잠재력은 '속도'에 있다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경쟁국인 싱가포르는 오랜 바이오 산업 역사가 있고, 중국은 아시아 최대 바이오 시장이라는 강점이 있지만, 한국 특유의 속도전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도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초고속으로 성장한 바이오 기업의 성공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과 호흡을 맞춰 '임계규모(Critical Mass)'를 갖추게 되면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한국머크 대표이사로 있으면 다른 머크 지사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내부 경영진에게도 싱가포르나 중국이 아닌 한국, 송도를 왜 선택해야 하는지 설득을 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이 가장 빠르다고 내세웁니다. 우리의 가장 큰 고객(한국 바이오기업)의 성공 사례가 있고, 빠른 것이 강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바이오의약 산업 분야에서 송도의 성장 전략은 현명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송도에서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강점을 살리려면 인허가 절차 간소화, 규제 완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머크의 경우 송도를 대상으로 물류·생산 관련 투자를 확대하려면 토지를 매입하고, 창고업이나 생산 관련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관련된 기관이 많다. 각 기관의 입장과 소통 방식이 다르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뒤 정부기관 간 의견이 달라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정부기관에서는 규제를 다소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가 다른 쪽에서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 한 기관에서는 투자 대상지가 괜찮다고 했는데, 다른 기관에서는 다른 부지가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듣기도 합니다. 앞으로 규제 개선 등을 통해 속도감 있게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면, 송도는 바이오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그룬트 대표이사는?
▲ 1968년생, 도르트문트대학교 화학공학 박사
▲ 1997년 본사 프로세스 개발 랩 매니저
▲ 2000~2005년 본사 엔지니어링&기술 개발 디렉터
▲ 2005~2008년 독일 게른샤임 사이트 엔지니어링&Maintenance 부사장
▲ 2008~2013년 본사 PM-Advanced Technologies Development 부사장
▲ 2013~2014년 한국머크 대표이사(2개 법인)-머크주식회사&머크퍼포먼스미티리얼즈(주)
▲ 2014년 한국머크 대표이사(3개 법인)-머크주식회사&머크퍼포먼스미티리얼즈(주)&머크일렉트로닉미티리얼즈(주)
▲ 2015년 한국머크 대표이사(6개 법인)-머크주식회사&머크퍼포먼스미티리얼즈(주)&머크일렉트로닉미티리얼즈(주)&씨그마알드리치코리아유한회사&씨그마알드리치홀딩주식회사&에이에프씨하이테크코리아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