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태
대한민국 해운 역사를 일궈 온 배순태 한국도선사협회 초대 회장이 2014년 12월 인천 동구 화수부두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1959년 인천항 첫인연 갑문 시운전 성공
국가고시 최초 도선사… 향년 93세 영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일주 선장, 국가고시로 면허를 취득한 최초의 도선사, 한국도선사협회 초대 회장, 인천항 갑문 최초 시운전(시험 입항) 성공.

배순태 (주)흥해 회장이 대한민국 해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향년 93세로 영면에 들었다.

배순태 회장은 지난 11일 오후 4시 숙환으로 숨을 거둬 14일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선영에 묻혔다.

그는 1925년 창원 상남면 토월리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창원 상남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농사일을 돕던 그는 어느 날 '고등해원양성소 학생모집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된다. 배순태 회장은 1941년 진해고등해원양성소에 입학해 선박운항 전문교육과 군사 훈련을 받았다.

해방 후 3천800t급 화물선 '금천호' 3등 항해사로 첫 승선을 하게 된다. 그는 회고록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한국해운신문 출판국·2016)에서 "금천호의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올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적선에 태극기를 최초로 게양한 역사적인 순간을 몸소 체험했던 것"이라고 했다.

배순태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일주 선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53년 6월 대한해운공사 소속 원양상선 '동해호'의 선장이 된다.

동해호는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선박으로 우리나라 해운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태극기를 달고 영국과 호주·인도 등에 최초로 입항한 대한민국의 국적선 선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배순태 회장은 6년 정도를 함께한 동해호에서 내린 뒤 도선사(導船士)에 도전한다. 그리고 1958년 10월 정부에서 처음 실시한 도선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다. 배순태 회장보다 앞서 도선사로 임명된 사람들은 있었지만, 국가고시로 면허를 딴 도선사는 그가 처음이다.

그는 도선사 면허를 받은 지 8개월 만인 1959년 6월부터 인천항에서 일했다. 1974년 3월에는 인천항 갑문 도크에 최초로 대형 선박(여수호)을 입거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국도선사협회를 조직해 그해 1월부터 1976년 2월까지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성화 봉송주자로 뛰기도 했다.

당시 소련 선수단을 태운 선박을 도선한 인연으로 성화 봉송주자가 됐다. 소련 선박이 우리나라에 입항한 것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처음으로, 화제가 됐다.

1993년 2월 인천항 도선사 정년퇴임까지 52년 동안 배를 탄 '뱃놈' 배순태 회장의 영결식은 그가 34년간 수많은 배를 안내한 인천항 갑문 부두에서 14일 진행됐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