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혜광학교 세종문화회관 공연1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인천 혜광학교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의 '장애인의 날 기념 음악회'에 앞서 단원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한손엔 악기' 도우미와 입장
첫곡부터 힘차게 수준급 연주
목포 왕복 강행군 단원도 뿌듯
인천국제고 외국어 통역 봉사


20일 오후 3시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의 '장애인의 날 기념 음악회'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객석 조명이 어두워지자 한 손에는 악기를 쥐고 다른 한 손은 도우미의 손을 잡은 60여 명의 연주자가 무대 위에 박수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악보도, 지휘자의 손짓도, 자신이 앉아야 할 의자가 어디 있는지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연주자의 낯설고 위태로운 입장을 3천여 객석을 채운 청중은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좁은 무대에 보면대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든 연주자가 자리를 잡고 연주자와 같은 인원의 도우미가 퇴장하고 나서야 관객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악장과 지휘자가 입장하고 인사를 마친 후 오케스트라는 첫 곡인 '카르멘 서곡'을 여느 수준급 오케스트라 못지않게 힘차고 안정적으로 보란 듯 연주했다. 장애를 이겨낸 이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된 청중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재학생을 주축으로 지난 2011년 창단했다. 그동안 6차례의 정기공연과 크고 작은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했고, 지난 1월에는 재학생·동문·시각장애 교사·타 지역 시각장애인 등으로 문을 넓힌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꿔 재탄생했다.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든 오케스트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은 설레고 긴장되는 연주회였다. 지역을 벗어나 큰 무대에 주인공으로 서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저시력 학생 전병준(15) 군은 "부평아트센터나 인천문화예술회관 보다도 몇 배는 커 보이는 객석을 보고 주눅이 들었다"면서 "그럼에도 수준급 연주자들만 설 수 있다는 곳에서 연주를 하게 돼 기뻤다"고 했다.

연주회를 위해 반년 넘게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연습에 참여한 단원도 있었다.

목포의 한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이성한(44)씨는 "매달 1차례 주말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고속전철을 타고 인천까지 와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면 저녁 9시가 넘어 체력적으로도 힘든 강행군이었지만 큰 무대에 선다는 생각에 참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무대 뒤에서 묵묵히 단원들을 도운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학부모와 혜광학교 교사들은 연주자들 옆을 지키며 악기를 챙겨주고 무대에 앉는 순간까지 안내하는 도우미 역할을 했고, 인천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은 각국 대사관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하는 통역 자원봉사를 했다.

국악인 오정해 씨는 출연료도 받지 않고 기꺼이 무대에 섰다.

오케스트라를 이끈 박기화 상임지휘자는 "대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대형 공연장에서의 연주가 부담스럽고 긴장되고 힘들었겠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컸을 것"이라며 "오늘 단원들의 도전이 다른 성공을 이뤄 내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유정복 인천시장과 독일·러시아·스웨덴·이스라엘·인도네시아·케냐·파라과이·미국 등 각국 대사가 참석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