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존재(cogito)로서의 인간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제1명제의 지위를 내주어야 하며,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생명공학의 발전과 유전자합성인간(android)의 등장으로 인간의 인간다움의 지표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리들리 스콧(1937~)의 영화 '블래이드 러너'(1982)의 원작이기도 한 필립 K. 딕(1928~1982)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968)는 진짜 인간과 가짜 인간을 구별 짓고, 진짜 인간이 가짜인간들을 제거하는 끔찍한 얘기다.
지옥의 묵시록이 전경화한 이곳은 세계대전 이후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멸종의 위기에 내몰린 샌프란시스코이다. 닉 데커드는 유전자합성인간인 안드로이드 전문사냥꾼으로 전기 양(electric sheep)아닌 진짜 자연산 양을 기르고 싶어 한다.
아침마다 그는 기분전환기 펜피드의 자동 알람을 이용하여 기상하며, 하루의 일정에 따라 기분전환기의 채널을 조정한다. 닉이 안드로이드와 진짜 인간을 구별하는 방법은 보이그트-감프 테스트 곧 감정이입의 반응 속도를 통한 시험이다.
기억은 얼마든지 주입될 수 있기에 과거의 추억이나 인간의 유전적 특질이나 생각하는 능력 따위는 이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의로서 효용성이 없다.
반면 지능이 너무 떨어져 오염된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한 이지도르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안드로이드들을 도와주는 인간다운 인간이다.
모자라는 인간 이지도르는 권력화한 기업집단 로젠 연합이 공장에서 만든 유전자 합성인간도 사랑과 외로움과 공포를 느끼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휴머니티와 공존의 윤리를 보여준다.
필립 K. 딕은 평생 공항장애와 모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암울한 묵시록적 전망과 획기적 상상력으로 세계 SF팬들을 사로잡는 다수의 걸작을 남겼다. 스토리의 초점이 흔들리고 어수선해 보이지만 이는 2019년 이후 지구라는 미친 행성의 분위기를 창출하는데 대단히 효과적이다.
사이버펑크 장르 특유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통해 그는 고차원 첨단과학과 저차원의 삶이라는 미래사회의 참상과 갈수록 모호해져가는 시뮬라시옹의 상황―즉 진짜와 가짜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생명마저 상품화하는 섬뜩한 자본의 논리, 정신문명이 뒷받침되지 않는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폭주에 대한 경고, 나아가 인간과 기술의 결합이라는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인간의 정체성 문제 등을 담아낸 충격적 퓨처 리포트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