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도시 인천, 국내외 물류·문화 중심 한국사 산증인
바다의 날 1998년 첫발… 상상력 표현 '대표 가족 축제'
시민 바다의 중요성·역사적 의미 일깨우는 성과도 의미
아이들에게 바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운 '경인일보 바다그리기대회'가 올해로 20년을 맞는다.
바다그리기대회는 바다의날(5월31일)을 기념해 인천시민과 아이들에게 바다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1998년 처음 행사가 열렸다.
인천은 과거부터 해양도시로서 역할을 했지만, 인천시민은 '바다'를 가깝다고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의 바다는 섬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업시설인 항만과 군의 철책선으로 막혔고,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바다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그리기대회는 '인천의 아이들은 바다를 어떻게 생각할까', '인천시민에게 인천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바다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를 발굴하고, 바다가 펼쳐진 곳에서 아이들에게 도화지를 나눠주며 '바다'와 관련한 무엇이든 그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첫 대회가 열린 1998년 5월 23일에 월미도 문화의거리, 인천항 갑문관리소, 자유공원에는 2만여 명의 학생·학부모가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림을 그렸고, 함께 대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바다를 이야기했다. '바다'가 시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이 도화지에 자신만의 색과 상상력으로 그린 바다는 다채로웠다.
월미도 갈매기, 인천항을 오가는 배, 다양한 바다 생물, 바닷속 생태계 등 아이들이 바라보고 상상한 바다는 무궁무진했다.
매년 5월 말이면 바다그리기대회가 열렸고, 아이들의 다양한 상상을 표현하는 장이 됐다. 1999년 인현동 화재사건,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큰 사건이 날 때마다 도화지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기기도 했다.
인천은 수천년 전부터 해양도시였으며, 인천의 역사는 인천 바다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능허대는 백제 시대 중국을 오가는 사신이 이용하는 나루터였다. 당시 인천 앞바다는 중국과 오가는 주요 항로였으며 이는 신라시대에도 이어졌다.
1883년 이뤄진 개항으로 인천은 외국의 물자와 문화가 교류하는 중심지가 됐다.
인천은 해양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세계 각국의 각축장으로 변모해 인천 앞바다는 전쟁의 참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1894년에는 청일전쟁의 핵심지역이기도 했고,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의 무대도 인천 앞바다였다.
일제강점기 월미도는 국내 대표적인 휴양지로서 역할을 했으며, 1950년 인천상륙작전은 당시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집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인천 앞바다는 인천 역사뿐 아니라 한국사와 궤를 같이했다.
산업화시대에 인천항은 국내 대표 수입항으로서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1974년 완성된 인천항 갑문은 아직도 아시아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이후 인천항 북항, 남항, 신항 등이 잇따라 개장하면서 무역항으로서 인천항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해양도시 인천의 역사가 바다그리기 대회 20년의 원동력이 됐다. 바다그리기대회가 시작된 이후 인천은 송도국제도시가 개발되고 인천신항이 운영을 시작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상은 바다그리기대회의 장소 다양화로 나타났다.
인천시민들은 매년 5월 말이면 다양한 장소에서 바다그리기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경인일보는 바다그리기대회 20주년을 맞아 그간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