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8개 국가에서 미국으로 오는 항공편에 대해 랩톱 등 전자기기의 기내반입을 금지한 조치가 일부 유럽 노선으로 확대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산업계가 '패닉'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루 350편의 운항으로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미국→유럽 항공노선에 이 조처가 적용되는 것은 단순한 범위의 확대를 뛰어넘어, 일대 '대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다.

승객 감소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는 것은 물론, 충격파가 관광업계까지 확산될 게 불 보듯 뻔하다고 미 월스리트저널(WSJ)과 CNN머니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국토안보부가 아직 구체적인 윤곽조차 공개하지 않았으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럽의 금융 허브들과 미국 뉴욕을 잇는 노선들 때문에 북미 대륙은 항공사들로서는 가장 경쟁이 심한 동시에 가장 수익이 많은 곳"이라며 항공사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심각한 피해에 노출된 항공사로는 미국의 델타, 유나이티드, 아메리칸항공과 영국항공이 꼽혔다. 이들 4개 항공사는 유럽발 미국행 논스톱 항공편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에드 배스티언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투자자들과의 회의에서 국토안보부가 전자기기 기내반입 금지 조처를 확대할 것으로 생각지 않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일단은 정부의 방침을 따른다는 반응이다.

반면, 유럽 항공사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며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대서양을 횡단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승객 수가 워낙 많고, 환승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계산법이 더욱 복잡해지므로, 계획 단계에서는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고 실제 시행에 들어가봐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부 유럽 항공사들은 안보상의 목적을 충족시키면서도, 승객 피해나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 행정부인 집행위원회(EC)는 지난 9일 존 켈리 미 국토안보부 장관과 일레인 차오 미 교통부 장관 앞으로 서한에서 양측의 '협력'을 중시한 것도 이런 우려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유럽 관광객 급감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미국의 관광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매년 미국으로 향하는 유럽인 관광객은 1천450만명 정도로, 유럽의 전체 해외관광객 가운데 40% 정도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 관광협회에 따르면 이들이 미국 여행서 지출하는 돈은 1인당 평균 3천∼4천 달러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부를 향해 전자기기 기내반입 금지 확대가 잘못된 방향이라며, '대안'을 촉구했다.

알렉상드르 드 쥐니악 IATA 회장은 "장기간 지탱할 수 없는 조처"라고 말했다.

국토안보부 등의 미 안보 부처는 이날 미 항공사 관계자들과의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 조만간 미 정부의 방침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테러 방지 등 안보상의 이유로 지난 3월부터 터키·모로코·요르단·이집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8개국의 10개 공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9개 항공사에 대해 랩톱, 태블릿, 카메라, DVD 플레이어, 전자게임기 등 전자기기 기내반입을 금지했다.

유럽발 미국행 노선으로 같은 조처를 확대하는 것은 불과 2개월여 만에 나온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