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계약금 4년뒤 1승만 '먹튀'도
서용빈 꼴찌 지명, 타격 성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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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드래프트는 프로구단들이 신인선수들을 나누어 뽑는 방식이다. 구단들끼리 순서를 정해 그 해 졸업하거나 군에서 제대하는 신인들을 지명하고 지명을 받은 선수는 그 구단과 입단협상을 벌이는데, 선수들로서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입단하지 않을 자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구단과 새로이 협상을 시작할 수는 없다.

선수들의 자유선택권을 무시하는 위헌적 요소마저 감수해가면서까지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팀들 사이의 전력을 평준화하고 몸값이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엄밀히 말하면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방조 하에 구단들 간의 담합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드래프트(Draft)는 각 팀이 연고지 내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독점적으로 선택하는 1차 지명과 1차 지명에서 연고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든 팀이 뛰어들어 지난해 성적의 역순으로 지명하는 2차 지명으로 나뉘어 진행돼왔다.

1985년까지는 연고지 내의 선수들에 대해 무제한으로 지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2차지명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같은 지역 출신의 유망주들은 모두 같은 팀으로 모여야 했기 때문에 프로야구가 지역대항전의 성격을 가지고 각 지역의 팬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함으로써 야구장으로 모이고 하고 프로야구가 조기에 안착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86년에는 10명, 1987년부터는 3명, 다시 1990년부터는 2명 혹은 1명으로 1차 지명권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2차 지명을 통해 다른 지역의 팀으로 입단하는 선수들의 수가 점차 늘게 되었다(2009년에는 1차 지명 자체가 폐지됐다가 2014년에 부활하기도 했다).

야구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들은 한정되어 있고 연고지 안에 그런 학교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프로팀들의 전력차가 너무 심해졌기 때문이다.

신인지명 과정에서 구단들의 관심은 당연히 '누구를 먼저 찍어야 하는가'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렇게 '찍히는' 순번에 따라 전체 프로 지망생들에게는 순위가 매겨지게 되고, 그 순위는 그대로 계약금과 연봉, 그리고 출전기회의 차이로 직결된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낮은 순번으로 지명된 선수가 상위 순번 지명자들을 앞지르고 먼저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특급 유망주로 꼽혔던 선수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곤 한다.

1996년 LG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고 당시로서는 신인 사상 최고액인 4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던 이정길이라는 투수는 입단 4년째인 1999년에야 겨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해 단 1승, 평균자책점 12.66이라는 성적을 남긴 채 사라지면서 '먹고 튄다'는 뜻의 '먹튀'라는 별명의 시조가 됐다.

반면 1994년에 전체 42명 중에서 41번째로 LG트윈스에 지명되어 1천8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서용빈은 바로 그 해부터 3할이 넘는 정교한 타격에 신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대활약 속에 곧바로 주전 1루수로 자리를 굳히며 '꼴찌성공신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성공 사례들을 빼더라도 드래프트에서 낮은 순위로 지명되었다고 해서 결코 불우한, 혹은 불운한 출발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해마다 900여명에 이르는 지원자들 중 그렇게 지명을 받는 선수는 많아야 100여 명에 불과하며 그 나머지의 '학생시절 내내 수업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야구만 하느라, 야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대책 없는 젊은이 800여 명은 그대로 황량한 거리로 내쳐진다는 사실을 살핀다면 말이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