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타석 채우고 2할대 초반 타율
'수비·작전 수행능력'으로 팀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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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메이저리그에 마리오 멘도사(Mario Mendoza)라는 선수가 있었다. 멕시코 출신으로 1974년부터 1982년까지 피츠버그, 시애틀, 텍사스를 오가며 활약한 유격수였다.

수비실력 만큼은 정상급이었기 때문에 늘 시즌 대부분의 기간을 메이저리그에서 보냈지만 타격능력은 꾸준히 바닥을 기었는데, 특별한 전성기와 슬럼프를 나누기도 어려웠던 그의 통산타율은 .215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어지간한 선수들 못지 않게 유명하다.

그가 그렇게 유명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조지 브렛(George Brett)의 인터뷰였다. 브렛은 캔자스시티 로열스 한 팀에서만 20년간 뛰면서 통산 300홈런-3천안타-200도루-3할 이상을 기록한 대스타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단어의 대명사 격인 인물이다.

그런 기록을 세운 것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스탠 뮤지얼과 더불어 단 두 명뿐일 정도다. 그런 그가 어느 해인가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그 때 찾아온 한 스포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이름이 스포츠신문의 타격순위란에서 멘도사보다도 아래에 있는 걸 보니 올 시즌 출발이 좀 안 좋은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는 또 얼마 후 그 슬럼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할 무렵에는 "요즘 휴일 아침에 신문을 펴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멘도사의 이름 아래 어떤 이름들이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남기기도 했다.

'확인 사살'을 한 셈인데, 그 말을 전해 듣는 멘도사의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졸지에 애먼 멘도사는 '최악의 타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된 동시에 '그래도 멘도사보다는 낫잖아'라는 식으로 슬럼프에 빠진 다른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에 활용되는 이름이 되어버린 셈이다.

어쨌든 그 인터뷰가 회자된 뒤로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2할대 초반을 맴도는'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들을 멘도사 라인(Mendoza Line)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멘도사라인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들이라고 해서 '팬들 속을 뒤집어놓는 쓸모없는 선수'라거나 '최악의 선수'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멘도사 라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타율만 낮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타석'을 충족시켜야만 대부분의 순위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데, 규정타석이라는 것이(현재 KBO의 규칙에 의하면) 팀이 치른 경기수의 3.1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거의 붙박이 주전급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면 멘도사라인마저도 넘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꾸어 말하자면, 그런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기용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가치와 매력을 가진 선수들에게만 주어지는 타이틀이라고도 생각해봐야 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원이 된 마리오 멘도사 역시 서너 단계의 마이너리그에서 날고 기며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후보 선수들과의 잠재적 경쟁에서 8년 동안이나 밀리지 않고 버텨냈듯이 말이다.

말하자면 멘도사 라인이란 극악한 타격 능력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수비실력, 혹은 희생타를 비롯해 기록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작전 수행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의미한다. 무엇이 됐건 숫자로 환산되기 어려운 측면에서 팀에 대한 기여가 출중한 '소금 같은' 선수들의 대명사인 셈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프로 원년 우승팀 OB의 주전포수였던 김경문(통산타율 0.220)과 90년대 초반 태평양의 키스톤 콤비였던 김성갑(0.235)-염경엽(0.195)을 비롯해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각 팀 내야진의 핵이었던 LG의 이종열(0.247), 기아의 김종국(0.247) 등이 대표적인 멘도사라인 플레이어로 꼽힌다.

수비와 작전에서 명성을 얻은 이름들 그리고 감독이나 코치로서 성공한 이름들이 자주 겹치는 것도 그래서 우연만은 아니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