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 대몽항쟁 위해 축성 시작
몽골 요구로 허물었다 쌓는 풍파
1677년 강화유수 허질 석성 개축
구한말 양요 등 외세침략 견뎌내
6 강화도 강화산성
처음엔 토성(土城)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의 풍파에 시달리며 어느새 석성(石城)이 되었다.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일대에 자리한 강화산성(江華山城) 얘기다.
성을 에워싼 묵직한 돌들만큼이나 묵직한 세월과 역사를 품고 있는 강화산성. 산성의 남쪽 성벽 장대에 오르니 강화읍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면서 산성에 오르기 전 짧게나마 살펴봤던 산성의 축조 배경이며, 몽골의 요구(1270년)로 헐렸다가 다시 개축되기까지 수많은 풍파를 이겨낸 산성의 역사가 파노라마 돌듯 펼쳐졌다.
강화산성은 구한말에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강화도조약 체결 등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한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강화산성이 세워진 것은 1232년 고려 23대 고종이 몽골의 2차 침략에 맞서기 위해 성을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사가 완공되기도 전에 강화도로 천도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본격적으로 성을 쌓은 것은 1234년부터라고 한다.
산성은 내·외·중성으로 구성된다. 이 성들은 모두 토성이었으나 1677년 강화 유수 허질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석성으로 쌓아올렸다. 1709년에 강화 유수 박권이 다시 개축했고 조선 후기에 보수가 이어졌다. 1973년에는 남문, 2004년에는 동문이 복원돼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성이기 때문일까. 6월의 신록과 어우러진 성곽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성곽을 이루는 돌들 하나하나가 말을 걸어오는 것도 같다. 산 아래 펼쳐진 강화읍,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
여느 산성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특히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북한의 송악산도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 모습까지 눈에 담지 못한게 아쉽기만 하다.
산성을 걷는 나들길도 잘 조성돼 있어 초록 무성한 숲길을 걸으며 성곽에 켜켜이 스며든 역사를 나도 모르게 그려보게 됐다. 한편 강화산성은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2호로 지정됐다.
글/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