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민족미술인협 5명 '의기투합'
길이 12m·폭 2.4m 주요사건 '빼곡'
1987년 6월 뜨거운 현장에서 시작
2017년 '촛불혁명' 광장까지 담아
5월 휴일 반납 간절함으로 완성해
고창수 작가 1989년부터 경험 많아
"미술학도 밑그림 비전공자가 채색"
김정렬 작가는 그림고충 보다 목아파
"1987년과 지금 크게 달라지지 않아"
'행복한 세상' 꿈꾸며 당당히 '사인'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인천민족미술인협회 회원 고창수(52), 김경희(53), 김영옥(49), 김정렬(56), 정평한(49) 등 5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해 그린 대형 걸개 그림에 담긴 지난 30년 주요 사건의 이미지들이다.
'6월의 꽃 촛불로 피어나다'라는 제목이 붙은 길이 12m, 폭 2.4m의 대형 걸개그림의 시작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1987년 6월의 현장에서 출발한다.
광장의 태극기 앞에서 두 팔을 든 채 달리는 눈에 익숙한 모습 오른쪽으로 이한열 열사를 끌어안은 모습이 회색빛 흑백 사진처럼 펼쳐진다. 그 옆으로는 자신의 삶 터를 지키려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의 모습이 불길 속에 그려진다.
옆으로 흥겹게 징을 치는 백남기 농민의 모습과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모습이 겹쳐지고, 수문이 열린 4대강 사업이 진행된 어느 보의 모습과 사드의 발사대 밑으로 머리띠를 동여맨 결연한 표정의 노인의 모습도 보인다.
작품 한 가운데에는 순수한 눈빛의 촛불을 든 어린아이가 중심을 잡고 있고 위안부 소녀상과 하늘로 날아가는 세월호, 촛불 혁명을 일궈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 걸개그림은 오는 10일 부평역 광장에서 열리는 6월민주항쟁 30주년 인천시민대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들은 이 걸개그림을 위해 5월 첫주 연휴와 매 주말을 반납하고 최근까지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촛불 혁명이 완성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조금은 무거운 마음에서 시작된 작업이었다. 그림이 조금씩 완성되어갈 즈음 선거가 있었고 촛불 혁명이 완성된 후에는 힘든 것도 잊고 작업에 임했다.
김영옥 작가는 "인간 존엄이 짓밟히고, 부정 부패가 난무하는 등 현대사의 아픈 사건을 그리는 일은 이번이 끝이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세상을 그리는 일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인천민예총의 전시공간 '해시'가 있는 남동구 구월동의 한 건물 3층에서 이번 작업에 참여한 5명의 작가를 만났다.
이 작품의 마지막 마무리 작업과 기념 촬영을 위해서 모인 것인데, 이날 이들은 각자 붓을 들고 아크릴 물감을 찍어 작품 왼쪽 하단에 각자의 '사인'을 남기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1980년대 걸개그림에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옥 작가는 "대학 시절 엄혹한 시기에는 걸개그림에 절대로 이름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또 익명성이 중요했는데, 이번 만큼은 각자 작품을 위해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남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걸개그림은 민중미술의 한 형태로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이 불붙으며 함께 널리 확산됐다. 때로는 집회가 열리는 광장, 대학교 학생회관에 걸리기도 했고,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 위치와 움직임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걸개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이유는 이름을 숨기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공동창작의 결과물이란 이유도 있었다.
1989년 복학생 신분으로 걸개그림 제작에 처음 참여해 여러 차례 작품을 그린 경험이 있다는 고창수 작가는 "미술 전공학생들이 주제를 정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나면 미술 비전공자인 학생들이 동원돼 채색 작업에 참여하는 공동창작의 방식이었다"며 "이름을 남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걸개그림이 필요한 경우라는 것은 큰 집회를 앞두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형 작품을 빨리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개인 작업을 할 때와 비교하면 방식 자체가 많이 달라야 했다.
실내 작업은 거의 불가능해 넓은 마당에 그림을 그릴 천을 펼쳐놓고 작업을 해야 했다. 한 눈에 작품을 보기가 어렵다 보니 도서관이나 학생회관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 지시를 하면 바닥에 다른 학생이 지시대로 밑그림을 그렸다.
김정렬 작가는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은 이게 무슨 그림인지도 모르고 위에서 시키는 데로 지시를 받아 그려야 했다"며 "마무리 색칠을 할 때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모든 학생이 붓을 들고 달라붙어 마무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 보다 소리를 지르다 보니 목이 아파 힘들었다"고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여년 넘게 각자 개인 작업에만 몰두해오던 이들이 다시 모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이들을 불러냈고 지난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 걸개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완성된 그림 앞에서 뿌듯해 하면서도 다시는 걸개 그림이 필요한 시대가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렬 작가는 "강산이 3차례나 바뀌었을 지난 30년을 그리면서, 1987년과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1980~90년대 철 지난 걸개그림을 다시 소환해야 했던 지금과 같은 시대가 다시 오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