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의석 확대를 위해 조기총선을 전격 요청한 테리사 메이 총리는 총리직 위기를 맞았다. 만일 물러나면 94년 만에 최단기간 총리로 기록된다.
메이 총리가 추구해온 '하드 브렉시트'에 불확실성이 드리워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진로도 수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9일 오전 현재 전체 650개 선거구 가운데 634개 선거구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보수당 309석, 노동당 258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4석, 자유민주당 12석 등을 각각 차지했다.
보수당이 남은 16석을 모두 가져가더라도 과반의석(326석)에 못 미쳐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이른바 '헝 의회'(Hung Paliament)가 출현했다.
BBC는 최종 의석수로 보수당 318석, 노동당 262석을 예측했다. 이 경우 보수당은 지금보다 13석이 줄어드는 반면 노동당은 30석을 늘리게 된다.
이런 가운데 메이 총리는 보수당 정부 출범에 나설 것임을 강력 시사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시점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나라에 안정의 시기가 필요하다"며 "지금 예측들이 맞는다면, 보수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고 가장 많은 표를 얻는다면 우리가 그 안정의 시기를 갖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게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그게 바로 정확히 우리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메이 총리가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 구성을 시도하거나 군소정당들과 정책합의를 통해 소수정부 출범을 시도할 것임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10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통합통일당(DUP)은 보수당과의 새 정부 출범 협상 의사를 밝혔다.
제프리 도널드슨 DUP 대표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 "헝 의회가 되면 우리는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며 DUP는 보수당과 많은 부분을 공통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동당 예비내각 에밀리 손버리 의원은 BBC에 연정은 배제했지만 자유민주당과 SNP 등 다른 정당들이 노동당 정책 지지를 바탕으로 노동당 소수정부 출범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1당인 보수당이 새 정부 구성 우선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연정과 정책연합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보수당이 정부 출범을 성사시키는 것과 별도로 메이 총리는 당 안팎에서 거센 사퇴 압박에 직면하면서 총리직도 위기에 내몰렸다.
이번 조기총선은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앞두고 "안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선거다.
하지만 의석을 대폭 늘리기는 커녕 오히려 과반의석마저 잃어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다만 BBC는 메이 총리가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고 소수 측근을 넘어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보수당 본부에서 나올 것이라며 보수당에서 메이 퇴진을 바라는 지배적인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메이 총리가 이날 아침 사퇴 의사를 밝힐 확률은 반반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날 메이 총리는 "이 나라의 국민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부를 위해 길을 열어줄 때"라며 총리직 사퇴를 요구했다.
메이의 총리직이 흔들리면서 영국의 브렉시트 진로에도 불확실성이 드리워졌다.
메이는 유럽연합(EU)를 떠나면서 EU 단일시장에서도 이탈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추구했다.
하지만 메이의 선거 패배로 영국이 하드 브레시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지 불투명해졌다.
노동당과 SNP, 자민당 등은 선거운동 기간에 하드 브렉시트 반대 전선을 형성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