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꼴찌' 삼미 11명 정리해고

"친정 팀과 처음으로 만나서 타석에 섰는데… 떨렸어요. 그냥 떨린 게 아니고, 방망이를 제대로 쥐지 못할 만큼 후들후들 떨렸어요. 그래서 안타를 치겠다거나 공을 골라내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옆에 앉아 있는 포수가 내가 떨고 있는 걸 보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 열이 받아서도 아니고, 얼어서도 아니고,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엄청 떨었던 기억 밖에 없네요."
주체할 수 없는 떨림. 그의 말대로 그것이 단순한 분노나 복수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 팀에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과열된 오기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평생을 야구장에서 살아온 한 사내가 새삼 발견한 냉랭한 현실 앞에서 조그만 빈틈이라도 보인다면 그대로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싸늘한 긴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그렇게 함부로 버려질 만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한다는, 천금 같은 삶의 무게와의 살 떨리는 대결이었을 것이다.
조직에서 버려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받아왔던 따뜻한 대접들이 사실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사소한 능력 따위를 향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평생 야구만을 잡고 살아온 이들에게 그것은 좀 더 현실적인 절망이기도 하다.
대개 초등학생 시절 야구에 입문한 이래 중·고등학교와 혹은 대학을 거치며 내내 수업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배트를 휘두르고 공을 던지는 일에만 전념해온 이들에게 야구 말고 할 줄 아는 일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중 지도자 자리를 얻거나, 새로운 팀을 만나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행운을 잡는 몇몇을 제외하면 하필 가장 많은 돈이 필요한 삼십 줄 안팎에서 퇴직금 한 푼 없이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그래서 막상 구단 숙소를 나서는 순간 그들이 대면하는 현실은 '박수 받으며 내려오고 싶다'는 한가한 명예나 자존심 타령이 아니라 당장 기저귀 값 잡아먹고 학원비 잡아먹으며 쑥쑥 커가는 자식을 바라보며 나오는 한숨들이다.
0.01초 차이로 세이프와 아웃이, 그리고 승리와 패배가 갈리는 야구장에서 몇 년의 세월은 짧지 않다. 그리고 해마다 새로운 선수를 뽑고 키워야 하는 야구팀에서 늙고 병들고 지친 선수들을 무작정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다. 떠나고 헤어지는 일들이 다 그렇듯,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야구장에서는 방출이다.
하지만 2009년, 경기의 승패가 완전히 기울어지기 전에는 내보낼 수도 없었던 부실한 투수 이대진의 이름을 한국시리즈 출전선수 명단에서 발견한 타이거즈 팬들이 열광하고 2008년 1할 타자 마해영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자이언츠 팬들이 흐뭇해하는 것도 또한 야구다.
야구장의 묘미는 멋진 플레이와 놀라운 기록들을 함께 하는 것에도 있지만,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소박하지만 비로소 진지해진 싸움들을 지켜보며 내 일처럼 눈물겨워하고 내 일처럼 응원하는 것에도 있다.
방출의 아픔과 절망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이가 있다. 1982년 전설적인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선수단의 3분의 1이 넘는 무려 11명의 방출. 그 중 김동철이라는 투수가 있었는데, 그 해 그는 팀의 80경기 중 32경기에 나서 93이닝을 던졌고 1승 9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7.06으로 지금까지도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최악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다. 비록 빼어난 실력은 아니었지만 선발, 중간, 마무리 구분 없이 '마당쇠'노릇을 한 셈이었고, 대학 4학년을 중퇴하고 입단해 단 한 해를 뛰었을 뿐인 스물 네 살의 젊은이였다.
하지만 여지없이 '해고' 통지를 받은 그는 좌절했고, 결국 철길에 몸을 던져 야구와 함께 삶을 마감했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