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 수석코치' 미봉책 아쉬움
어떤 병에 걸린 환자가 있다고 치자. 주요 원인을 추정할 순 있어도 하나를 콕 짚기는 어렵다.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표를 던지는 회사원의 결심에도 크고 작은 이유가 들어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국가대표팀은 큰 병에 걸렸다. FIFA랭킹 43위가 82위(중국)와 88위(카타르)에 패했다. 77위와도 비겼다. 한두 수 아래인 팀을 상대로도 골을 넣지 못하고, 매 경기 실점이 이어진다.
대한민국 최고 선수들이 모인 팀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졸전을 펼친다. 대한축구협회가 여러 처방을 내렸지만, 지금까지 약효가 하나도 없다. 32년 만에 월드컵이 '남의 잔치'가 될 위기에 빠졌다.
누구 잘못일까? 가장 손쉬운 비난 대상은 감독이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8경기를 거치면서 슈틸리케 감독은 전술 부재, 의사소통 부족, 세심하지 못한 발언 등 온갖 문제를 드러냈다. 3월 말 극적으로 받은 유임 선물마저 카타르 원정에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의 경질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대한축구협회도 인선 실패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영입 당시부터 슈틸리케 감독의 실적은 의구심을 자아냈다.
20년 넘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2012년 카타르리그 우승이 유일한 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기자회견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작은 부분에 집착하는 발언들이 잇따랐다. 능력자가 절실했던 마당에 협회는 몸값 저렴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을 데려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3월 말 협회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잡았었다. 중국과 시리아전 부진으로 여론이 만들어졌고, 카타르전까지 준비기간도 두 달 넘게 남은 덕분이었다.
문제 원인을 파악할 시간도 충분했고, 새 감독을 찾을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협회는 정해성 수석코치 선임이라는 미봉책에 그쳤다. 카타르에 패한 지금, 한국은 남은 두 경기에서 월드컵 운명을 걸어야 한다. 180분에 자신의 명예를 시험해야 할 자리에 오려는 지도자는 드물다.
언론도 자아비판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선수 선발부터 각종 대응책까지 소위 '아마추어티'가 났다. 댓글 내용대로 선수를 선발하거나 전술을 바꾸는 순진함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언론은 '갓틸리케' 분위기에 편승했다. 그의 민낯을 적시하는 기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처럼 언론도 인터넷 댓글의 눈치를 보며 배임했다. 이제야 앞다투어 화살을 퍼붓는 모습이 무안하다.
대표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경기는 이제 딱 두 번이다. 물리적 시간은 두 달 남았다. 그 안에 뭐든지 해야 한다. 고쳐야 할 대상이 감독이든 선수든 상관없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처럼 협회와 대표팀은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 나가고 싶다면 말이다.
/포포투 한국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