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동작 등 심판의 '절대적 판단'

'세이프-아웃'처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위의 결과에 관한 판정이 아니라, '동작'에 관한 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디오판정의 대상이 점점 확대돼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심판의 절대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는 애매한 영역이기도 하다.
원래 보크(Balk)라는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방해하다'라는 뜻이 나온다. 하지만 야구장에서는 '위투(僞投)', 즉 투구동작에서 속임수를 쓰는 행위를 가리킨다. 심판에 의해 투수에 대한 보크가 선언되면 주자들에게는 각각 한 베이스씩의 안전진루권이 주어지며, 타자에게는 한 개의 볼이 카운트된다.
야구경기의 모든 플레이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그 출발점이 되는 투수의 투구동작에 대해서는 특별히 세밀한 규정의 간섭이 이루어진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투수의 투구를 신호로 개시되는 타자의 스윙과 주자의 주루에 관한 모든 동작이 잘못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던지지 않는다거나, 혹은 갑자기 동작을 바꾸어 누상의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진다면 타자와 주자는 제대로 타이밍을 잡아 타격과 주루를 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심할 경우에는 근육, 신경 계통의 부상을 입을 우려도 생기게 된다.
투수의 보크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투수판이다. 투수판은 투수가 투구동작을 시작할 때 반드시 밟고 있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수판을 밟지 않은 채 투구동작을 하거나,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투구가 아닌 다른 동작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보크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투수판과 관련해서 보크 판정을 받는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투수가 투수판에 중심 발을 디딘 채 투구동작을 시작한 다음 그 투구를 중지할 때, 투수판을 디딘 채 1루에 송구하는 흉내만 내고 실제로는 하지 않을 때, 투수판에 발을 디딘 투수가 루에 송구하기 전에 발을 그 루의 방향으로 똑바로 내딛지 않을 때, 투수판에 발을 디딘 투수가 주자가 없는 루에 송구하거나 송구하는 흉내를 낼 때 등.
하지만 그 밖에도 보크판정을 받는 경우는 다양하다. 타자가 타석에서 아직 충분한 자세를 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투구하거나 일단 멈춤으로써 투구동작의 정확한 시작을 알리지 않는 경우. 혹은 투구동작 중에 멈추었다가 다시 진행하는 식으로 타자를 현혹하는 경우에도 보크가 선언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벌어진 가장 특이한 보크는 1986년 7월 26일 잠실 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 소속이던 장명부가 저지른 '고의보크'였다.
그날 경기 6회 말에 6대 5로 앞선 경기를 지키기 위해 구원등판한 장명부는 8회 말에 동점을 허용한 데 이어 9회 말에도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아 역전주자를 내보냈고, 이어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상황에서 공을 가지지 않은 채 투구와 유사한 동작으로 몸을 풀다가 보크를 선언 당했다.
하지만 그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장명부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연속으로 두 개의 고의사구를 던져 만루를 만들어놓은 다음 투구 자세에서 곧바로 3루에 견제구를 던지는 '고의보크'를 저질러 결승점을 내주었던 것이다.
그 보크 선언을 통해 3루에서 안전진루권을 얻은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결승점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유일한 '끝내기 고의보크'로 기록되기도 했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