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집착하다 '팀워크 방해' 우려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라고 표현하지만 미국에서는 '히트 포 더 사이클(Hit For The Cycle)'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올마이티 히트(Almighty Hit)' 또는 '해트 트릭(Hat Trick)'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6월 12일 삼미와의 경기에서 삼성의 오대석이 처음으로 달성한 이래 2017년 6월 7일 삼성전에서 두산의 정진호가 만들어낸 것까지 모두 23번 기록됐다.
양준혁은 1998년 8월 23일에 이어 2003년 4월 15일에도 기록해 생애 2회 기록을 가진 최초의 선수가 됐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상대팀은 자신의 소속팀 삼성의 숙적이었던 현대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NC 소속의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가 4월 9일 기아전과 8월 11일 넥센전에서 각각 기록해 '한 시즌 2개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가장 아깝게 사이클링히트를 놓친 경우로는 3루타가 필요한 상황에서 홈런을 날린 1995년 LG의 조현, 2010년 넥센의 유한준, 혹은 3루타까지 쳐놓고도 2루타 한 개가 부족해 놓친 2010년 두산의 최준석 등이 있다.
물론 가장 어렵다는 3루타까지 완수해 놓은 상태에서 2루타나 단타 하나가 모자라 기록 달성에 실패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하지만 최준석의 경우 특별히 아쉽게 생각되는 이유는, 최소한 130㎏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체구 덕분에 상대 외야수의 보이지 않는 실책이 결부된다고 해도 3루타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선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7년까지 그가 치러온 15시즌을 통틀어 3루타는 딱 5개 밖에 기록하지 못했는데, 그 중의 한 개를 기록한 데 이어 홈런과 단타까지 곁들였던 바로 그 날(2010년 5월 14일 SK전) 평소에는 비교적 흔하던 2루타 한 개를 채우지 못해 역대 사이클링히트 달성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8년 10월 25일에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프로행을 미룬 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서 뛰던 강기웅이 제일은행과의 경기에서 사이클링히트에 3루타 하나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홈런을 때리고도 고의적으로 홈 베이스를 밟지 않는 '고의적인 누의공과'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
홈런을 치더라도 홈 베이스를 밟지 않으면 아웃이 되며, 그 전에 정상적으로 밟은 마지막 루인 3루까지의 진루만 기록으로 인정된다는 규정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승부가 기울어 있는 상태에서 상대 간판타자의 괘씸한 기록 만들기까지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한 제일은행 코칭스태프는 누의공과를 항의하지 않았고, 심판 역시 모른 체해버림으로써 강기웅은 원치 않는 홈런기록만 하나 추가한 채 사이클링히트 기록 만들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이클링 히트는 업적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기념품'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장타력과 정확성과 스피드까지 겸비한 타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이긴 하지만, 동시에 실력보다도 더 큰 운이 따라야만 완성될 수 있는 간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클링 히트 기록 만들기 위해 너무 집착하는 모습은 종종 팀워크를 해치는 이기적인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상 강기웅의 '고의 누의공과' 같은 두드러진 사례들 말고도 지금까지 달성된 사이클링히트 기록 중 몇몇은 '3루타 치고 2루에서 멈추기'나 '2루타성 타구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3루까지 질주하기' 같은 소소한 노력의 에피소드들을 품고 있다. 사이클링 히트라는 기록이 가진 묘한 구석이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