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풍납토성·경복궁 발굴조사와 고려 도성 기초조사 진행
유물·유적 활용 등 시·군 지자체와 적극적 논의·협력할 것
고려 500년 남북 학술교류 필요… 수도권 문화재연구에 온힘
신라·삼국·가야·백제·마한 등 기존 지방연구소 뒤이어 고려 연구소 설립 필요성 제기돼 강화가 선택됐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고려는 39년간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몽골의 군대와 꿋꿋하게 맞섰다. 강화도 해안가에 돈대와 외성, 궁궐을 포함한 내성, 외성과 내성 사이 중성을 쌓았고 왕실 사찰도 만들었다. 철옹성 같은 주변의 바다와 드넓은 갯벌 등 자연여건은 강화도의 또 다른 무기가 됐다. 강화도는 그렇게 고려를 품었다.
사적 133호로 관리되는 고려궁지 바로 옆 옛 강화군립도서관 건물에 자리 잡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의 이규훈(46) 소장을 지난달 27일 만났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 상반기 강화에 둥지를 튼 인천 소재 첫 문화 관련 국립기관이다.
이규훈 소장은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중세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지역"이라며 "국가기관 차원에서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중세 연구로 학술적인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지자체와 시민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규훈 소장은 강화도를 "우리나라 역사의 응축(凝縮)"이라고 정의했다. 선사시대부터 고대는 물론, 중세와 근·현대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엔 항상 강화도가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화도엔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고인돌이 곳곳에 있다. 남한에서 가장 큰 탁자식 고인돌인 '강화지석묘'를 비롯해 그 숫자만 160개가 넘는다.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마니산 참성단과 정족산 삼랑성 등의 유적도 있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물줄기가 합쳐져 서해로 연결되는 강화도는 삼국시대 때에도 해상무역과 군사적 차원에서 중요하게 활용됐다. 고려 때엔 몽골과의 항쟁을 위해 39년간 수도로서의 역할을 했고, 고려 말기에도 수도권 방어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규훈 소장은 "조선 병자호란 때엔 일부 조정 대신들이 피신한 일도 있었고, 개화기 때엔 서구 문물들이 강화도를 통해 들어오게 됐다"며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항상 강화도가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내용의 3분의 1이 강화도와 관련한 내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그만큼 유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강화도의 역사를 더욱 심도 있게 조사하기 위해 강화문화재연구소가 생긴 만큼,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월 말 공식 직제가 확정돼 업무를 시작했다. 현재 이규훈 소장을 비롯해 9명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내년까지 2명 정도가 더 충원될 예정이다.
국립 문화재연구소 산하 지방연구소는 경주, 중원, 가야, 부여, 나주 연구소 등 5개가 있었다. 신라, 삼국, 가야, 백제, 마한 등이 이들 지방연구소의 주된 연구 분야였다. 5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려를 연구할 연구소 설립 필요성이 제기됐고, 결국 39년간 고려의 전시 수도였던 '강화'가 그 역할을 맡게 됐다.
고려 역사 연구의 핵심이자 수도권 유일의 지방연구소인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는 현재 풍납토성 발굴조사와 경복궁 발굴조사, 강화를 중심으로 한 고려 도성 기초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풍납토성과 경복궁 발굴조사는 역사 문헌과 그 문헌에 나온 내용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고고학적 방식으로 연구된다.
고려 도성 기초조사는 내년 본격적인 발굴을 위한 말 그대로 기초적인 조사이다. 이규훈 소장은 "백제의 풍납토성과 강화에 있는 고려 도성, 조선의 경복궁 연구는 고대와 중세, 근대로 이어지는 도성의 역사적 맥락을 잇는 연구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고려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중세 연구는 고대와 근대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고려의 수도가 북한의 개성이었던 만큼, 고려 관련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의 전시 수도였던 강화도는 우리나라 중세 연구의 핵심적인 지역이라는 게 이규훈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 고려 문화재는 석조물이나 탱화, 칠기, 도자기, 철불 등 주로 움직일 수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지만, 경주나 부여처럼 건물지, 고분 등 땅 위에 고정된 유적은 적다"며 "강화도에서 고려시대 절터나 고분들, 이궁지 등을 발굴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규훈 소장은 문화재 연구와 관련해 인천시와 강화군 등 지자체와의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나타냈다. 인천시는 39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도의 역사유적을 대대적으로 발굴해 복원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강도(江都)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강화도에 남아있는 고려 유적을 발굴하고 복원해 강화도를 경주나 부여 같은 '고도(古都)'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인천시 구상이다. 고려궁궐 재건·활용, 고려 기록유산 활용, 강화 역사건조물 활용, 강화 역사유적 가치창조, 고려 건국 1천100주년 기념사업 등 5개 분야 20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인천시는 강화도 해안가에 집중돼 있는 해양관방유적과 강화지역 고려왕릉 4기(홍릉, 석릉, 가릉, 곤릉)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작업도 추진한다. 해양관방유적은 강화 해변의 보(堡)와 돈대(墩臺), 산성 등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해안 방어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군사유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화지역 고려왕릉엔 고려의 역사·문화·예술적 가치가 충분히 담겼다는 평가다. 이규훈 소장은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활용해 의미 있는 자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일련의 사업을 추진하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분도 당연히 우리가 일정 부분 협조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지자체가 활용을 원하는 유물·유적이 어떤 성격인지 규명하고, 발굴해서 전시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며 "그런 과정에서 유물·유적 등 문화재가 더욱 잘 보존되는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규훈 소장은 "고려 관련 연구에 대한 남북 학술교류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은 고려 역사유적 발굴과 복원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2013년엔 고려 궁궐인 만월대를 포함한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국제적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선사시대 이후 신라 1천 년, 고려 500년, 조선 500년으로 이어져 오는데, 고려의 제2 수도가 있던 강화 39년만으론 고려 500년을 밝히는 데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큰 틀에서도 분단 전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함께 흘러온 만큼, (역사분야에 대한) 남북 간 공동연구는 필요하다"고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최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 등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남북 학술교류의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규훈 소장은 "초대 소장으로서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강화문화재연구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설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문화재청에서 발굴과 시굴 등의 업무를 했을 때 강화도가 담당 지역이었던 연이 있었다"면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강화도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책임자로서 연구소를 어떻게 이끌지, 앞으로의 방향설정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부담감도 컸다"고 했다.
그는 "강화도가 있는 인천을 비롯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문화재 연구 국가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이규훈 소장은?
▲ 1971년 출생
▲ 1997년 전북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 1999년 문화재청 학예연구사
▲ 2003년 전북대 대학원 석사(고고학)
▲ 2005년 문화재청 학예연구관·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
▲ 2007년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관
▲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학예연구관
▲ 2011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
▲ 2014년 국립 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학예연구관·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관
▲ 2017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