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인공지능등 화두 논의
광교상수원 관련이슈 '노코멘트'
고은 시인이 침묵을 깨고 오랜 만에 수원문인, 시민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지난 5월 본의 아니게 '수원시 광교 상수원보호구역(비상취수원) 해제'와 관련해 시인의 거처를 문제삼은 일부 시민들로 인해 논란에 섰던 고은 시인은 그동안 어떤 공식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공식 활동도 자제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사)수원문인협회(회장·박병두)가 수원문학인의집에서 진행한 금요문학광장에 초청 명사로 나서 '반세기의 시와 세계'라는 주제로 28일 지역문인, 시민들과 공식적으로 만났다.
일각에선 이번 행사가 개최되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으나 시인은 흔쾌히 소통에 나섰고, 통상 50명 정도 자리하는 행사에 이례적으로 200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 시인과의 만남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6시30분에 시작된 사전행사부터 참석한 고은(85) 시인은 고령임을 염려해 앉아서 강의를 해달라는 청중들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1시간 가량 이어진 강연을 강단에 서서 청중들과 호흡했다. 시인은 '반가움'이란 화두로 강연을 시작했다.
"반가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핏줄끼리 느끼는 반가움, 이웃간의 반가움,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는 반가움 등. 세월마다 인류마다 다양하다… 우리는 어쩌면 다시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스치듯 인사한다. '언제 술한잔해'하고 인사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조상들은 그러지 않았다. 신적인 의미를 가졌다. 정중히 인사하고 반가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화두를 던졌다. "20~30년 뒤 우리가 반가움을 느낄수 있을까"
시인은 "인공지능 알파고가 얼마전 바둑대결에서 커제 9단을 완패시켰다. 인공지능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뇌에 칩을 심고, 인공장기가 등장하고 곳곳이 초(超) 인공지능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반가움의 마지막 연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50년 뒤에는 슬픔도 없어질지 모른다. 감정도 없어져서.. 그때 우리 문학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시인은 다가오는 8월이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한다. "8월을 앞두고 있다. 우리의 자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의 날'. 나에겐 이번 8월이 더 뜻깊다. 내가 1933년 양력 8월1일생인데 음력으로는 6월10일이다. 살아오면서 양력과 음력이 겹치는 날이 없었는데 올해 처음 겹쳤다"고 운을 뗀 시인은 "1940년대(일제시대) 음력이 많이 사라졌다. 아울러 우리언어 공간이자 집터로 세종때 만들어진 한글이 식민지 전시 교육을 받으며 말살됐고, 해방 후 소학교에서 '국문'을 아는 사람을 손들라고 하니 별로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몰래 배워 알고 있었고, 그 덕택에 월반해서 3→4학년이 됐다"고 말했다.
"중1때 교과서에서 처음 시(詩)를 접했다. 그 시가 이육사의 '광야'다. 그때 김소월이나 만해 시를 처음 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광야'는 대공간, 내 영혼에는 도착할수 없는 곳이다. 시골 아이가 광야를 알기는 힘들었다. 그때 시는 너무 크다 생각해 미술을 좋아하기도 했다"는 시인은 예정에 없던 시 낭독을 자청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한 청중의 '어떻게 시대를 앞서 가느냐'는 질문에 "지금도 책을 산다. 어제도 19권을 샀다. 책을 아주 좋아한다. 밥과 술을 맛있게 먹듯 책도 맛있게 읽는다. 그러면 책이 좋아해 안 줄 것도 준다. 대강대강 만나면 진심을 안준다. 밥도 오래 씹어보라. 난 술도 씹어먹는다"
청중과 오랜만에 만난 고은 시인은 연예인을 방불케 하는 사진과 사인 요청에도 흔쾌히 응하며 소통했다. 상수원 관련 이슈에 대해선 노코멘트 했지만 그간의 일을 모두 잊은 듯 청중들과 호흡하고 그렇게 공식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