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 김옥이 전도사 영향 사회복지 헌신
가족 없는 장애아동 한집에서 보살펴
성장한 원생들 나눔 품앗이 한몫보태
김 원장은 "성장한 아이들이 성인이 돼 또 다른 아이들을 돌 보는 것이야 말로 품앗이의 선순환"이라고 했다.
그가 지금껏 아동복지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모친인 김옥이 전도사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6·25 전쟁 직후 거리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넘쳐났을 당시 김옥이 전도사는 아이들을 하나, 둘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어머니는 주변의 부모를 잃은 또래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며 "덕분에 나는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아이들과 형제처럼 지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좁은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 늘어났고 김 원장에게는 이에 대한 불만도 생겼다.
김 원장은 "집으로 들인 아이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절대로 사회복지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머님의 피를 물려받는 김 원장이기에 그 역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머님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규모가 큰 기업에 입사했지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이 그에게는 이미 숙명같았다. 1980년 어머니의 뒤를 이어 김 원장은 의정부시 호원동에 위치한 이삭의집 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가족이 없는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어머니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 어릴 적 내키지 않았던 사회복지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삭의집에서 처음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돌본 이후 40년 가까이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한 원동력 역시 어머니께서 실천했던 조건 없는 사랑이다. 지난 1999년 포천시 신북면 산골에 가족이 없는 장애아동들을 위한 노아의집을 설립해 또 다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김 원장의 손을 거쳐 간 아이들이 성장해 교수가 되고, 선교사가 돼 다시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는 모습을 볼 때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김창언 원장은 "내가 어머니께 받았던 사랑을 다른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 다시 나에게 받았던 사랑을 다른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품앗이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포천/정재훈기자 jjh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