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까지 무실점으로 던져도 '빈손'
1회 못버틴 구원투수가 챙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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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한화의 에이스 문동환이 시즌 개막 한 달 만에 6승째(1패 1세이브)를 올리는 놀라운 페이스로 다승부문 선두로 치고나가던 2006년 5월 초, 롯데의 팬들은 '문동환의 경쟁상대는 김롯데 뿐'이라고 자조했다. 롯데의 팀 승수가 문동환이라는 한 명의 투수가 거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8승(18패)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야구는 두 팀이 겨루어 각자 승리와 패배를 나누어 가지는 경기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승리와 패배를 개인 기록으로 새기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투수들이다.

선발투수가 최소한 5회 이상을 던지는 동안 팀이 리드를 잡았고, 그 리드가 유지되어 팀이 승리했을 때 그 투수를 승리투수로 기록한다. 하지만 선발투수가 던지는 동안이든, 강판한 다음이든 간에 팀이 역전을 당하거나 동점을 허용하게 되면 승리투수 자격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선발투수가 5회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거나, 역전과 재역전의 과정을 거치며 선발투수가 승리투수의 자격을 잃은 상태에서 팀이 이겼을 경우에는 그 승리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기록원이 판단한 투수에게 승리투수의 지위가 주어진다. (관행적으로 팀이 다시 리드를 잡는 시점에서 던지고 있었던 투수가 승리투수로 인정받지만, 엄밀히 따져서 기록원이 다른 투수가 더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인정하면 승리투수는 바뀔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리드를 빼앗기는 점수나 주자를 내준 투수는 패전투수로 기록된다.

이렇게 여러 포지션 중 투수에게만 승리와 패배라는 기록을 남겨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속설처럼, 팀의 승리와 패배에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투수라는 점 때문에 오늘날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또한 선발투수들의 능력치를 표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고려되어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단 1점을 내주고 완투하더라도, 심지어 그 1점이 야수들의 실책 따위로 인해 만들어진 '비자책점'이라 하더라도 자기 팀 타자들이 2점을 뽑아내지 못하면 패전투수의 멍에를 쓸 수밖에 없는 반면, 10점을 내주더라도 동료들이 11점을 만들어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수에게 주어지는 승리와 패전의 기록은 상대적이며 상황적이다.

그리고 8회를 무실점으로 던진 선발투수가 아니라 1회도 채 버티지 못하고 실점을 허용한 구원투수에게 승리투수의 영예가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공평하며 역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적이고 불공평하며 역설적인 상황들을 겪어온 이백여 년의 야구역사 끝에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흔히 '10승 투수가 되는 법'을 논하고 '15승 투수'를 에이스와 동의어로 사용한다.

그것은 투수에게 주어지는 승리와 패배가 가지는 상대성, 상황성, 불공정성 그리고 역설들이 야구 자체가 가지는 불가사의함의 진폭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는 스포츠이지만 게임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동안 갈고 닦은 육체의 능력을 측정하는 측면이 있기에 '스포츠'임에 분명하지만 순간순간 돌발하고 굴절되는 의외성이 있어 '게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한 투수가 승리투수가 되는 데는 강한 어깨와 다양한 기술, 지략들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동료 타자들에게 자신감과 희망과 확신을 심어주고 동기를 부여하며 때로는 흥분하도록, 때로는 냉철해지도록 하는 관계의 능력도 필요하다.

한 경기를 통해 한 팀이 가질 수 있는 승리, 패배와 똑같은 기록상의 승리, 패배가 양 팀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이유에는 그런 점들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