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바꾸다가 슬럼프에 빠질 수도

3루수는 2루 베이스 뒤로, 유격수와 2루수는 1루와 2루 사이로, 1루수는 1루 베이스 뒤로, 그리고 중견수는 우익수 쪽으로, 우익수는 우측 파울라인 쪽으로.
그라운드 좌측에 남은 것은 좌익수 하나 뿐인 셈이었는데, 극단적으로 당겨치기만을 고집하던 전설적인 왼손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타구를 잡아내기 위해 클리블랜드의 젊은 감독 루 부드로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수비 포메이션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부드로 시프트(Shift)'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모든 팀의 수비수들이 테드 윌리엄스를 상대로 같은 방식을 쓰게 되면서 '윌리엄스 시프트'로 바꾸어 부르게 됐다.
그 뒤로도 배리본즈, 이승엽, 김재현 같이 일관되게 잡아당기는 타자들을 상대하는 팀들이 비슷한 방식을 썼고, 그 때마다 '배리본즈 시프트', '이승엽 시프트', '김재현 시프트' 같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타자의 습성은 쉽게 바뀌기 어려운 것이며, 아무리 정확히 때려낸 타구라 하더라도 수비수가 잡아내면 아웃시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수비전략이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가장 약한 곳을 노리는 대신 가장 강한 곳에 놓는 덫이 시프트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몰려 있던 수비수에게 정확한 안타성 타구 한두 개가 잡히기 시작하면 타자들도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2009년 LG에서 뛰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페타지니가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시즌 개막 후 두 달 여 동안 4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던 타자 페타지니는 시즌 중반 이후 상대팀들이 펼친 극단적인 시프트 수비에 걸려 대여섯 개의 안타를 잃어버리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루수 쪽으로 기습번트를 대보기도 하고 조금씩 밀어치기도 했지만, 너무 느린 발과 오랜 세월동안 굳어져버린 관성 탓에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오히려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타율도 0.332까지 떨어지게 됐다.
시프트에 대처하는 타자의 해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시프트 수비를 경험했던 테드 윌리엄스의 해법은 이런 것이었다.
"980그램짜리의 약간 무거운 배트를 1.5~2㎝쯤 짧게 쥐고 때리자 여러 방향으로 날카로운 타구들을 날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 팀들이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하느라 휑하니 뚫려있던 좌익수 방향으로 많은 안타를 때려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테드 윌리엄스도 이젠 늙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잡아당기는 타격을 할 수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다른 팀 수비수들이 시프트를 풀고 정상수비로 돌아갔을 무렵, 나는 다시 가벼운 배트를 들고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그 해 여름쯤에는 우익수 방면으로 마음껏 공을 잡아당겨서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테드 윌리엄스, 《타격의 과학》)
그리고 2002년, 역시 시프트 수비 때문에 고전하던 김재현이 김성근 당시 LG 감독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더 세게 때려서 넘겨야지."
조금 다른 점은 있지만, 테드 윌리엄스와 김성근감독의 해법은 모두 타격 폼과 타격 리듬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핵심에서 같다. 타자로서 최악의 상황은, 그 수비망을 피해가기 위해 무의식중에 조금씩 타격 폼을 바꾸다가 리듬을 잃고 슬럼프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