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 슬로 커브등 한 시대 풍미

커브볼은 직구와 정 반대의 방식으로 날아간다. 직구를 던질 때 투수는 끝까지 공을 손가락으로 긁어내림으로써 최대한 많은 회전을 걸려고 노력한다. 공이 아래에서 위쪽으로 강하게 회전하면(back spin) 바람의 저항을 그만큼 많이 흘려보낼 수 있게 되고, 또 그만큼 지면 쪽으로 처지지 않고 똑바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브는 그 반대로 손가락을 공 위에 걸고 던지며 앞쪽으로 깎아내림으로써 공이 위에서 아래쪽으로 회전하도록(top spin) 하기 때문에 공은 더 많은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지면 쪽으로 떨어지는 궤적을 그리게 된다. 따라서 커브는 모든 면에서 직구와 반대의 특성을 가진다.
느리고, 떨어지며, 곡선으로 움직인다. 물론 완전한 직선이 아닌 팔의 궤적에 따라 어느 정도 옆으로도 휘는 궤적을 그리기도 한다.
제일 먼저 커브볼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1872년 뉴욕 뮤추얼스에서 데뷔한 뒤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하트포드, 신시네티 등에서 6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투수 캔디 커밍스(Candy Cummings)라고 전해진다.
그는 키가 165㎝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왜소했지만, 고향의 강가에서 조개를 던지며 놀다가 우연히 터득한 커브 하나로 통산 145승(94패, 평균자책점 2.49)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성적을 토대로 193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으며, 초대 마이너리그 커미셔너(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그가 커브를 던지기 전까지는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것 외에는 휘는 공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투수들도 저마다 좀 더 빠른 공을 던지는 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캔디 커밍스가 NA(National Association ; 내셔널리그의 전신)에서 1872년부터 1875년까지 4년 동안 무려 199경기에 등판해 194경기를 완투하며 124승을 거두는 괴력을 선보이자 상황은 달라졌다. 그의 공을 향해 속절없이 헛스윙을 하고 돌아 나온 타자들이 입을 모아 '공이 휘어지며 날아 온다'고 아우성을 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것을 타자들의 단순한 착시로 치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캔디 커밍스가 포수와의 사이에 막대 두 개를 세워두고 투수 쪽 막대의 오른 쪽 밖으로 휘어져나갔다가 포수 쪽 막대의 왼 쪽 밖으로 들어오게끔 공을 던져 보임으로써 커브의 존재는 실증됐다.
커브는 궤적이 크고(크게 휘고), 느리며, 떨어진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궤적이 크면 타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고, 느리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을 수 있으며, 떨어지면 타자가 배트로 맞힐 수 있는 기회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커브에도 다양한 변종들이 생겨났는데, 그저 느리게 휘며 떨어지는 전통적인 슬로 커브 외에도 빠르게 꺾이며 떨어지는 파워커브나 슬러브(슬라이더와 커브의 혼합형), 보통의 커브보다 더 크게 떨어지는 너클커브 등이 그 예다.
미국에서는 오클랜드의 배리 지토가 느리고 큰 각도의 전통적인 슬로 커브의 대명사라면, 마이크 무시나, 페드로 마르티네스, 혹은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 등이 횡으로 휘는 빠른 커브를 잘 던진 투수들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현대 시절의 정민태와 SK 시절의 이승호가 직구와 시속 40㎞ 가까운 차이를 보이며 타자들을 '얼려버리는' 슬로 커브로 유명했으며, 김상엽, 김원형 등은 직구와 별 구속차가 없는 시속 130㎞ 후반대의 '파워커브'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