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시장 상인·시민단체들 '거센 저항' 반대집회·서명운동 확산
롯데·신세계, 수원·부천·인천 금곡 등 대규모사업 잇단 브레이크
정부도 신규 출점은 물론 기존 매장 영업제한 '규제 강화' 움직임
실패 맛본 업계 '상생스토어' 해법… 지자체 경쟁력 확보 지원도

예전 같으면 밀어붙이면 됐을 일들도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 정부는 '골목상권 부활'을 아예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유통업체들의 앞길에 '빨간 신호등'을 켠 셈이다. 편리한 시설과 세련된 서비스에 호의적이었던 고객들마저 대형 유통업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사방에서 압박을 받게 된 대형 유통업체들은 골목상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골목상권 상인들이 '만만치 않은 상대'로 발돋움 하고 있는 것이다.

# 더는 못참겠다는 골목상권
초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해 6월 말, 부천시 상동의 한 대로변에 피켓을 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부천·삼산동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인천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을 앞세운 이 사람들은 인근 인천 부평지역의 전통시장과 상가 상인들이다.
이들은 신세계가 이곳에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건립하면 자신들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며 쇼핑몰 부지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골목상권 상인들의 저항은 그저 흔히 보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천권 상인들의 반발은 이후로도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결국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라 신세계 복합쇼핑몰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앞서 지난 2014년 7월에는 수원역 인근에 오픈을 앞두고 있던 '롯데몰'에 반발해 인근 전통시장 상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집회에 참여한 상인들의 숫자는 1천여 명에 달했다.
아예 점포 문을 닫아 걸고 저항에 나선 상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롯데는 수원시의 중재로 상인들과 협상을 벌인 끝에 거액의 상생자금을 내놓아야 했다.
이처럼 전통시장 상인들의 저항이 '거칠어진' 배경에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공격적인 매장 확장이 자리해 있다. 통계청의 도소매업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대형종합소매업체수는 지난 2007년 459개에서 2014년 634개로 늘었다. 백화점은 같은기간 84개에서 97개로 증가했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경기도는 같은 기간 동안 대형종합소매업체가 103개에서 163개로 늘었다. 도내 대형종합소매업체 중 111개가 대형마트, 쇼핑센터가 37개다.
지난해와 올해도 스타필드하남과 스타필드고양(신세계), 시흥프리미엄아울렛(신세계사이먼) 등 초대형 쇼핑몰들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앞으로도 동탄2신도시 '롯데타운',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인천 송도신도시 '롯데 송도 쇼핑타운' 등이 줄줄이 문을 열 예정이다.
반면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은 대형 유통업체에 손님을 빼앗겨 맥을 못추고 있다. 통계청 전통시장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전통시장 점포수는 2013년 21만433개에서 2015년 20만7천83개로 3천350개나 줄었다. 2015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내 빈 점포수만 1만8천821개에 달한다.
# 고개 숙인 유통 대기업
골목상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유통 대기업들은 곳곳에서 좌절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천 상동 신세계 복합쇼핑몰이다. 신세계가 지난 2015년 9월 부천 상동 영상문화단지 복합개발 민간사업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을때, 이 사업이 표류할 것을 예상하는 이는 없었다.
당시 신세계는 2018년까지 8천700억원을 들여 영상문화단지(38만2천700여㎡) 내 7만6천여㎡의 상업부지에 문화·관광·여가 활동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건립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는 장밋빛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사업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인근 인천지역 전통시장 상인과 시민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상인들이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인천시와 정치권까지 이 문제에 개입하고 나서면서 사업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복병을 만난 신세계는 고심 끝에 규모를 3만7천여㎡로 대폭 축소해 백화점만 짓는 것으로 사업 계획을 수정했지만, 반발여론을 잠재우는데 실패하면서 사실상 사업이 무산됐다.
비슷한 상황은 서울에서도 벌어졌다. 롯데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조성하는 사업이 지역 상권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롯데의 상암 복합쇼핑몰 사업은 부천 상동 신세계 복합쇼핑몰보다 앞선 2012년부터 추진돼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매입하고 건립계획까지 확정(2017년 완공)했지만, 2015년부터 진행된 지역상인들과의 상생협의가 파행을 거듭한 끝에 결국 롯데가 손을 들고 말았다.
인천에서는 올해 인천 금곡점 입점을 추진하던 이마트 노브랜드가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진통을 겪다가 결국 입점계획을 포기하기도 했다.

# '골목상권 보호' 내건 정부
이같은 골목상권의 저항에 불을 붙인 것은 새 정부의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거듭 '골목상권 보호'와 '대규모 복합쇼핑몰 규제'를 강조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가 내놓은 골목상권 보호 정책은 강도가 높다. 당초 공약으로 내걸었던 복합쇼핑몰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물론이고, 이미 규제를 받고 있는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 강화까지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가 골목상권에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출점 제한' 규제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포함될 전망이다. 골목상권 주변을 '상업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이곳에는 아예 대규모 점포의 출점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월 2회로 돼 있는 의무휴업일을 월 4회로 확대하고 영업시간 제한 대상도 확대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골목상권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상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반면, 유통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신들에게 겨눠진 이같은 규제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시장경제의 근본을 무너뜨리고, 규제 대상도 지나치게 편중돼 형평성에서 벗어난다는게 대형 유통업체들의 주장이다.
# 해법을 찾아라
골목상권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편에서는 지나친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통업체들의 사업마다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지역 개발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시장 전반에 불신과 싸움이 확산되고 있는데 따른 우려다. 이에따라 대형 유통업체와 골목상권 간의 상생을 이뤄낼 해법을 찾는 시도도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규모가 큰 만큼 골목상권 상인들과의 마찰도 가장 많은 신세계가 내놓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좋은 사례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그동안 상극처럼 여겨졌던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손을 잡은 상생점포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전통시장 내에 입점하면서 임대료 일부와 편의시설 등의 부담을 떠안고 전통시장과 판매가 겹치는 품목을 최대한 제한해 골목상권 침해를 줄였다.
지난해 8월 당진시장점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경기도내에는 지난달 안성맞춤시장점이 오픈했다. 당진시장 상생스토어의 경우 개점 이후 시장을 찾는 고객 수가 상생스토어 입점 전보다 4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높이는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공공임대상가' 사업이 사례다.
조성된 지 20년 이상 된 상가 밀집지역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있는 상권 등을 매입해 소상공인이나 청년 창업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 주는 사업으로, 침체된 골목상권에 다시 힘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도 도입해 추진 중이다.
/조윤영·이원근기자 jy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