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없는 한' 샴페인 터뜨릴 준비
1위팀 방심하다 2위에 혼쭐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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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해마다 시즌 막바지에 이르면 신문의 프로야구 관련 기사 제목에 '매직넘버(magic number)'라는 단어가 등장하곤 한다.

매직넘버는 일정한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기들을 치르며 거둔 최종성적을 집계해 우승팀을 가리는 프로스포츠에서 시즌이 끝나기 전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이 우승 확정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를 표시하는 숫자이며, 그 시즌 경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카운트다운의 과정이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매직넘버란 '2위 팀이 남은 경기를 모두 이긴다고 가정할 때, 1위 팀이 2위 팀에게 추월당하지 않고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시키기 위해 이겨야만 하는 경기의 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1위 팀이 1승을 추가할 때마다, 그리고 2위 팀이 1패를 추가할 때마다 매직넘버는 1씩 줄어들게 되며, 매직넘버가 0이 되는 순간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샴페인을 터뜨리게 된다. 물론 1위 팀이 2위 팀을 상대로 승리한다거나 해서 1위 팀의 1승과 2위 팀의 1패가 동시에 늘어나면 매직넘버는 한꺼번에 2가 줄어들게 된다.

보통 매직넘버는 한자리 수로 줄어들게 됐을 때, 그리고 1위 팀이 남은 경기의 절반 정도만 이겨도 2위 팀의 성적과 무관하게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세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시점이란 예컨대 한 해 144경기를 치르는 한국 프로야구리그에서는 대략 120경기 이상을 소화한 무렵부터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최소한 한국의 경우, 기자들이 언론지면에서 '매직넘버'를 세기 시작한 팀이 우승에 실패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공개적으로 매직넘버를 세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우승 확정은 시간문제'라는 인식을 담은 것이며, 기자 나름의 분석력과 예측력을 동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한 번 매직넘버 카운트가 미처 0에 도달하지 못한 채 중단될 뻔 한 적이 있었다.

2009년 9월 2일, 2위 SK와의 승차를 6경기까지 벌리며 매직넘버 9를 찍기 시작한 기아가 무려 열흘 가까이를 흘려보낸 9월 11일에야 매직넘버를 하나 줄인 데 이어 다시 보름 가까이 지난 뒤 정규시즌 종료를 단 한 경기 남겨둔 25일에서야 한 경기 차로 우승을 확정했던 것이다.

시즌 후반기가 시작된 이래 내내 선두를 달리던 기아는 갑작스레 5연패에 빠지는 등 부진을 거듭한 반면 2위 SK가 시즌 마지막 19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맹추격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매직넘버를 띄운 뒤에는 팀의 페이스가 무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이 추격하는 팀에게는 '한 경기라도 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일깨우는 숫자인 동시에 앞서가는 팀에게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우승이 확정됐다'는 여유를 주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1위 팀 선수들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우승을 확정 짓고 싶다는 마음에 몸보다 마음이 앞서게 만드는 '아홉수'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로 해마다 시즌 막판이 되면 진작부터 앞서가던 팀이 기세를 타고 더욱 분발해 연승행진을 벌이며 단숨에 매직넘버를 지워나가는 경우보다는, '설마' 혹은 '혹시나' 하는 걱정과 호기심을 자극해가며 찔끔찔끔 줄어드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그런 스릴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매직넘버 세기 놀이'의 진짜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은 어쩌면 이미 넉넉한 차이로 도전자들을 누르고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선두팀이, 2위 팀 뿐만 아니라 시간과 운이라는 도전자를 상대로는 얼마나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를 살펴보려는 팬들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관전 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