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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소래포구는 바다의 정취와 함께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명실상부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 성장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해산물·수인선협궤·염전… 풍부한 바다정취 
1960년대 실향민 정착후 소형어선 파시 형성
최근 화마 덮친 어시장, 점차 옛 활력 찾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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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4시 경기도 시흥시 월곶 소래대교 인근 공터에서 바라본 인천시 남동구 소래포구의 모습이다.

고층 아파트 단지가 가까이 보이는 도심임에도 아직 하루 200여척의 어선이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멀리 가지 않고도 바다의 정취와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어 사랑을 받는 소래포구 인근 어시장은 수도권 최대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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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공판장은 주말이면 울긋불긋 각종 파라솔이 자리한 채 싱싱한 해산물과 옛 포구의 정취를 찾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연간 660만명이 찾는 용인 에버랜드와 500만명이 찾는 롯데월드 등 한국을 대표하는 테마파크보다 더 많은 84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통계(2012년 기준)도 있다. 지난 3월 새벽에 갑작스레 덮친 화마(火魔)로 포구 인근 시장이 잿더미로 변하며 잠시 활기를 잃기도 했지만 점차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하이앵글 소래포구 소래철교
옛 수인선 협궤열차가 오가던 현재 소래철교는 소래와 월곶을 잇는 인도교로 변신했다.

소설가 이원규·윤후명, 시인 이가림·장석남 등 수 많은 문인들의 문학작품에도 소래포구는 자주 등장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이 있지만 '꼬마열차'로 불린 수인선 협궤열차와 주변 염전도 소래포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추억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소래포구는 전통적으로 포구의 역할을 하던 곳이 아니었다. 1960년대 실향민이 하나둘 자리 잡으며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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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에 정박한 어민들이 해산물을 배에서 옮기고 있다.

소래포구가 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인천항에 현대식 갑문이 준공된 1974년 이후의 일이다. 인천 앞바다에서 새우잡이를 하던 소형 어선들이 항구 출입이 어려워지자 소래포구로 몰려들며 포구에 새우 파시가 형성됐다. 새우·꽃게·젓갈시장으로 부상하고 생선회 등을 파는 수백 개의 좌판도 이때 생겨났다고 한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하이앵글' 시즌Ⅲ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