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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다큐영화제가 진행 중인 지난 24일 고양 일산 메가박스 백석점에서 조재현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옥상 야외테라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오가면서 그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제공

영화제가 힘 생기면 공격 받겠지만 그만큼 힘있는 영화제가 되기 원해
사장과 알바 입장이 다른 '최저시급' 치킨집 소재 다큐로 만들고 싶어
당초 목표 80%는 달성… 10주년 앞두고 강박은 없지만 새 출발점 돼야
규모에 비해 사무국 인원 적어… 365일 다큐 상영하는 장소 마련 '노력'

노조원 이야기에 왜 사측 입장은 보여주지 않느냐는 고등학생
혐한데모 다룬 영화에서 혐일도 함께 문제 제기한 재일 한국인 감독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다큐에 대한 그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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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배우 조재현은 경기도로부터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봄이었고, 영화제는 같은 해 가을에 열릴 예정이었다. 급조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없어지는 것도 금방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DMZ라는 장소가 가진 힘과 다큐라는 장르의 매력이 부합한다며 성장 가능성을 높이 봤다. 그렇다면 해볼만 하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그와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올해도 안녕히 관객과 만나고 있다.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목표를 세웠어요. 내가 위원장이 아니더라도, 경기도지사가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것이었죠. 정치적으로 휩쓸려서 영화제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어요. 다큐 영화 만드는 감독들은 대부분 진보적인데, 초대 조직위원장이었던 당시의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소속이라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대로 했죠. 지금 도지사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한결같이 지켜주고 있어요. 언젠가 도지사가 바뀌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고, 영화제가 힘이 생기면 공격을 받게 되기도 하겠죠. 그러나 공격받을 만큼 힘이 생긴 영화제라면 흔들기도 어려워요. 그런 영화제가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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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드물게 장수하고 있는 그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만들어진 감동적인, 소소한, 의미심장한, 유쾌한, 안타까운, 곱씹게 되는, 많은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간직하고 있다.

"재작년 청소년경쟁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영화가 학업 성적이 좋은 친구가 만든 작품이 있었는데, 제목이 '시발'이었어요. 수업과정에 대한 스트레스를 담았는데 그 한마디 제목이 시원스러웠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대학도 다큐 공부를 하는 쪽으로 갔다더라고요. 올해부터는 '영상으로 쓰는 생애 이야기'라는 실버 세대를 위한 다큐 제작 지원도 하는데, 참가하신 분들 대부분이 70대이시고, 90대인 분도 계세요. 처음으로 카메라를 만지고 촬영을 하는 거예요. 구술사와 감독의 도움을 받아서 아주 진지하게 작업하시고 계세요. 영화제 2회 때 쌍용자동차 파업을 기록한 '저 달이 차기 전에'를 상영했을 때는 관객들이 많이 울었어요. 다큐 제목은 노조원이 달을 보며 '저 달이 차기 전에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탄하는 장면에서 따온 거예요. 노조위원장이 패배를 인정하는 마지막 장면은 처절하죠.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왜 사측의 입장은 보여주지 않느냐?'고 질문하더라고요. 그때는 학생이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데 놀랐고, 한편으로는 다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어제 상영한 '카운터스'에는 혐한데모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이들의 대장은 야쿠자였어요. 스스로 우파라고 생각하고, 혐한데모를 했던 사람이에요. 혐한데모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하지 말자고 데모를 하게 된 거예요. 영화는 혐한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재일 한국인인 감독은 한국에서의 혐일 행위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 합니다. 재일한국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생각과 시선이 담겨있어요. 오 아니면 엑스가 아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요."

지난 9년 동안 조재현 집행위원장은 다양한 사람들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나고, 이를 통해 수많은 삶의 조각을 접했다. 그 조각들은 하나도 같은 것 없이 각자의 색으로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보는 그도 변했고, 세상의 변화도 실감했다.

"자기 생각과 성향을 표출하는데 당당해진 것 같아요. 2002년이 기점이었던 것 같아요. 월드컵 이후부터 촛불로 표현하고 한데 뭉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죠. 그러나 서로 표현만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지 않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상대를 더 이해하고 인정하며 다양성을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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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다큐멘터리가 주춧돌이 되리라고 그는 믿는다. 그런 사회가 될수록 다큐의 영역은 확장되고, 관객들에게도 더 환영받을 것이라고도. 이를 위해 자신이 직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의향도 있다. 제목은 아마 '나는 치킨집 사장님이다'일 것이다.

"다양함에 대해서라면 직접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지인이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데, 굉장히 잘 되는 편이래요. 그 집에 갈 때마다 손님들이 차있어요. 장사가 잘될 때 수입이 500만원, 잘 안되면 250만원 정도 된데요. 근데 내년 최저시급이 1만원이 됐잖아요. 오른 시급으로 알바비를 주면, 장사가 잘 안되는 달에는 수입이 50만원 정도가 될 거라며 걱정하고 있어요. 청년들의 입장은 또 다르죠. 물러설 수 없는 첨예한 문제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내년이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10회를 맞는다. 세계 30여개국 62편의 작품이 참가한 가운데 첫 영화제를 시작했고, 올해는 109개국 1천187편의 출품작 중 42개국 114편이 상영된다. 경쟁부문은 국제경쟁, 아시아경쟁, 한국경쟁, 청소년경쟁 등 4개의 섹션으로 진행되며 총 11개 부문을 시상한다.

신인다큐감독 발굴을 위해 '젊은 기러기상'도 신설했다. 제작 지원을 받았던 감독들이 수상자로 돌아왔고 참가자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다양해졌다.

집행위원장을 오래 할 생각은 없었지만 처음의 목표를 달성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기왕 여기까지 오고 나니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초대 집행위원장으로서 꼭 해야 할 일, 정착시켜 안정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80%쯤 달성했다고 봅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먼 일이 아니에요. 이제부터는 이 영화제가 꼭 필요한 영화제로 보여지고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10주년을 크게, 화려하게 해야한다는 강박은 없다고 했다. 다만 미래를 준비하는 계획의 출발점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단단한 조직을 만들고, 상설 상영관도 마련할 계획이다.

"영화제 기간동안은 40~50명의 인원이 일을 하지만, 영화제 사무국 고정 인원은 6명이에요. 영화제 규모가 커진데 비해 너무 적죠. 일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체계적으로 업무가 연장되려면 이보다는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또한 크지는 않더라고 365일 언제든 다큐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다보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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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위원장은?

-경력

▲ 2009.07 ~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 현재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 영화학과 교수

▲ 2012.03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 미디어영상연기과 학과장/ 부교수

▲ 2010.08~2014.09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 2009.01~2014.05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수상내역

▲ 2015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014 제5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013 제17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남우주연상

▲ 2011 연극열전3 어워즈 작품상

▲ 2008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남자연기상

▲ 2001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 1992 청룡영화제 신인연기자상

▲ 1991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