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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도 않은 모자 팔겠다는 고집뒤에 12살 가장 '하잉'의 간절한 삶의 무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베트남 도시 벗어나면 소수민족 '그들만의 의상' 입어… 흐몽족·자오족·후라족 모인 장마당 전통의상 파티장 온듯


뺨이 노을처럼 발그레한 계집아이들은 남루한 옷차림에 더러는 맨발이다. 직접 산으로 들로 헤매며 꺾어 만든 꽃다발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밥도 되고 학교도 되고 연필도 된다고. 물론 대부분의 여행자에겐 귀찮은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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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어린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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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세요!

"꽃 사세요!" 이처럼 정다운 말이 또 있을까. 아침나절, 짙은 안개 사이로 계단식 논이 그림처럼 펼쳐진 복사꽃 만발한 산길을 홀로 걷고 싶었지만 잊을 만하면 고갯마루에서 몽족 아이들이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여행자들을 쫓아다니며 시들기 전에 꽃을 팔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꽃을 사들고 숙소에 도착할 때쯤이면 반쯤 시들어 병에 꽂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가 되지만 다음날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늘 비슷한 꽃이 내 손에 들려져 있곤 했다.

하잉.
사파시장에서 만난 기념품 파는 소녀 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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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장에 나온 흐몽족 여인들.
나는 아이가 시든 꽃을 버리고 하루 장사를 망쳐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걸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매일 아침 내가 내 자신에게 꽃을 바치는 작은 의식이 축복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많은 나라 오지 아이들로부터 나는 꽃을 선물로 받아왔다. 거기엔 무언의 조건이 붙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 때마다 대부분 사탕이나 볼펜 하나로도 흡족해했다.

사파 아이들의 그 꽃값은 우리 돈 5백원 정도, 흥정을 잘하면 단돈 백원으로도 살 수 있고 반대로 천원을 줄 수도 있지만 나는 저들이 정한 5백원이라는 금액이 적정액이라 믿는다. 사파에서의 날들뿐 아니라 아침마다 단돈 5백원이면 살 수 있는 행복이 세상 도처에 있다는 것을 여행자가 아니었으면 나는 몰랐을 거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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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을 상대로 야생화를 파는 블랙 몽족 소녀들(사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구나

사파에서 며칠을 보내고 박하로 이동했다. 꽃몽족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하는 제법 큰 마을이지만 오토바이로 한나절을 가야 하는 '꼭리'와 '깐꺼우'는 베트남 북부에서도 오지 중 오지다. 도착 첫날 한 소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행자들에게 작은 주머니를 파는 수줍음 많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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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오지마을.

아이가 내게 주머니를 내밀며 1달러를 외쳤을 때 나는 거절했고 다른 아이가 들고 있는 모자에 눈길을 주었다. 그 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거래를 청했다.

"내 모자를 팔아주세요. 네?" "무슨 소리야, 넌 주머니만 있잖아." "지금은 모자가 없지만 내일은 저것보다 예쁜 모자를 가져올 수 있어요." 나는 아이의 눈빛이 하도 간절 하길래 그럼 내일 한 번 모자를 보자고 했다. 다음날 아이는 같은 시간에 박하시장을 떠돌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우린 또 눈이 마주쳤지만 아이는 다시 내일은 꼭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뭔가 속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의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어 장난삼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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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거리에서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

다음 날은 떠날 예정인 터라 그날 오후 나는 걸어서 옆 마을로 산책을 나갔다. 그 마을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움막 앞에 난장에서 있지도 않은 모자를 팔아달라던 소녀가 서있었다. 넷이나 되는 동생들과 함께. 묻지 않아도 그곳이 아이의 집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안내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의 실내풍경을 잊지 못한다. 왜소증인 아이의 엄마가 어둑한 실내에서 열심히 모자에 손수를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는 몽족과 흐몽족 전통의상과 가방과 모자를 짜고 그것이 완성되면 아이가 나가서 팔아 생계를 잇고 있었던 것이다.

장마당에서 내가 모자에 관심을 보이자 엄마에게 부탁해 재봉질을 하고 손수를 놓기 시작했다는 모자가 거의 완성을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가 있지도 않은 모자를 팔아 달라 간청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처럼 학교에도 갈 수 없는 12살 소녀 가장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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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꺼우 시장 사람들.

그때서야 궁금해졌다. "이름이 뭐니?" "하잉, 하잉이에요." 이렇게 예쁜 이름이 있었구나. 너무 늦게 이름을 물어봐 얼마나 미안했는지. 나는 하잉이 엄마가 모자를 마무리할 때까지 곁에서 실밥을 잘라주며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내가 자리를 일어날까봐 그랬는지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차 한 잔을 끓여주었다.

나는 아이의 마음씀씀이가 기특해 등을 토닥이며 "하잉,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줘서 고맙구나.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입속말로 속삭였다.

그날 나는 블랙 몽족이 입는 재킷과 가방과 모자와 지갑을 부르는 가격, 딱 그만큼을 더 얹어 사고 말았다. 모처럼 내 배낭은 무게를 더했지만 그때 산 모자는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재킷과 가방은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몽족 재킷을 입고 거울을 보면 하잉의 얼굴이 떠오른다. 많이 자랐을 것이고 여전히 가장노릇을 하고 있을 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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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그들만의 의상'

베트남 하면 아오자이가 연상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소수민족은 각기 다른 그들만의 의상을 입는다.

검은색 계통의 의상을 고집하는 블랙 몽족을 비롯해 흐몽족(화몽족), 자오족, 자이족, 후라족, 타이족들이 각기 그들만의 문화를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의상으로 어느 부족인지를 안다고 한다. 장마당은 마치 전통의상 파티장 같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