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하다 자치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수반이 위기 타개책으로 검토해온 조기선거 방안을 포기하면서 독립선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직접통치 계획을 철회한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카탈루냐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집권 연합의 독립 '강경파'가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26일(현지시간) 생방송 담화를 통해 조기 선거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스페인이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장악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내 책무라고 생각해 조기 선거 시행을 검토했지만, 중앙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해 이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페인 정부의 자치권 박탈(헌법 155조 발동) 계획에 대한 대응책은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지데몬은 스페인 정부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독립파의 대의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조기 선거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왔다.

선거에서 푸지데몬이 속한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 등 독립파가 승리하면 푸지데몬은 다시 한 번 카탈루냐인들의 신임을 얻게 되고 패배하더라도 '명예로운 퇴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집권 연합 내 분리독립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독립을 선언하지 않고 스페인과 충돌을 피하려고 조기 선거를 시행하는 것은 지난 1일 치러진 주민투표 결과(투표율 42%에 독립 찬성 90%)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집권 연합 내에서 거세진 것이다.

이날 그의 담화에 앞서 푸지데몬이 자치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선거 방침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자 집권 연합 소속 의원들 일부가 "조기 선거 방침 발표 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독립을 즉각 선언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조기 선거 구상이 알려지자 "푸지데몬은 반역자"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등장했다.

푸지데몬이 이런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조기 선거 카드를 포기하자 스페인 정부는 자치권 박탈 방침을 재확인했다.

소라야 사엔스 데 산타마리아 스페인 부총리는 상원에 출석해 "정부는 법치의 회복을 위해 새 국면으로 진입할 준비가 됐다"면서 자치권 박탈에 착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카탈루냐 자치의회는 이날 저녁(현지시간) 스페인 정부의 카탈루냐 직접통치 계획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자치의회는 분리독립 추진파가 가까스로 과반을 점하고 있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푸지데몬이 조기선거 구상을 철회한 것으로 미뤄 독립 강경파의 의견이 더 지배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카탈루냐의 독립선언 가능성이 커지자 이에 반대하며 중앙정부와의 대화를 요구해온 자치정부 내 온건파들이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산티 빌라 재무장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나는 사퇴한다. 대화를 위한 내 노력은 또 실패했다. 내가 카를레스 푸지데몬 수반과 카탈루냐인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실제로 지난 24일 스페인 정부의 돌로르스 몬트세라트 보건장관은 카탈루냐가 독립선언을 결정할 경우 빌라 재무장관과 "어쩌면 자치정부의 다른 각료들"도 사퇴할 수 있다고 말해 자치정부 지도부의 줄사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치의회가 독립공화국 선포안을 의결할 경우 스페인 상원이 정부의 헌법 155조 발동안을 27일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스페인과 카탈루냐는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파리·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