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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된(250년) 만달레이 우베인 다리의 노을. /김인자 시인 제공

건조기후서 자란 나무 갈아 제조 자외선 차단·잡티 예방… 아이·젊은 남자도 애용
인도차이나 지역서도 유일·지방 여행 가는 곳마다 "뺨·코·이마에 한번 발라볼래?"
2500개 이상 파고다가 있는 '올드 바간' 경전의 가르침 '진정한 善은 용서 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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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Thanakha)

미얀마 남자 누구나 입는 일상복이 '론지(통치마)'라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여자들 얼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천연화장품 타나카(Thanakha)다. 색상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이 주를 이룬다. 미얀마를 여행하다보면 십중팔구는 타나카를 바를 만큼 대중적인 화장법이다.

나무이름에서 따온 타나카는 주로 미얀마 중북부의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지고, 북쪽 쉐보(Shwebo)지역의 것을 최고로 꼽으며 잎은 식용으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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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를 바른 미얀마 소녀의 얼굴. /김인자 시인 제공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주로 애용하며 화장품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의약품으로써의 효과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이는 자외선을 차단해주고 피부에 트러블을 없애주며 잡티나 얼룩 같은 것을 막아주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인도차이나지역에서도 유일하게 미얀마에서만 볼 수 있는 화장법이어서 이를 처음 대하는 여행자라면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재료는 기념품점이나 일반가게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만드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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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파는 타나카 재료들. /김인자 시인 제공

가운데가 약간 들어간 둥근 석판에 물 서너 방울 떨어트린 후 토막을 낸 타나카 나무를 벼루에 물을 붓고 먹으로 갈듯 걸쭉하게 갈아내면 된다. 이때 좋은 글씨를 위해 먹의 농도를 조절하듯 타나카도 같은 원리다. 다소 번거롭기는 해도 나무를 곱게 갈아 젤처럼 걸쭉해진 타나카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은 2~3분이면 족하다.

타나카는 천연화장품인 만큼 보관이 쉽지 않아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부분 즉석에서 갈아 쓰지만 바쁜 도시 여자들은 직접 만들지 않고 여러 타입(액체, 고체, 파우더)으로 개발된 상품을 선호하는데 그중 젤 타입이 가장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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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에게 필자의 얼굴을 맡겼더니 이렇게 해 주었다. /김인자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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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여행하다보면 이를 만드는 석판과 재료가 없는 집이 없어 가는 곳마다 "너도 한번 발라볼래?"라고 권하는 바람에 몇 번 발라봤는데 걸쭉한 입자가 피부에 그대로 나타나며 화장품이 뺨에 닿은 느낌은 상쾌하다.

다만 건조되는 과정에서 피부가 조금 당기는 느낌이 있으며 그 액체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는 화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을 대면 안 된다.

타나카는 여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어린아이나 실외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들도 많이 하는데 보통은 두 뺨과 코와 이마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바른다.

그러나 미모에 관심이 많은 처녀들은 나뭇잎이나 꽃잎 모양의 무늬를 새기며 그야말로 온갖 방법으로 타나카화장을 즐긴다. 아이들이 거리 자판에서 타나카 재료를 파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으며, 파고다와 함께 타나카를 제외하고 미얀마를 이해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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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레호수에서 배를 저어 학교에 가는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

*올드 바간

그들의 불심은 어디서 온 걸까. 약 2천500개 이상의 파고다가 있다는 불국정토 올드 바간의 풍경은 여행자를 고대 도시로 안내한다. 40도를 웃도는 폭염, 사원 앞에서 만난 아기가 걸음을 붙든다. 아이 엄마는 맨발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두꺼운 스웨터 차림새는 남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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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 무렵의 올드 바간 전경. /김인자 시인 제공

여자가 안고 있는 아기는 벌써 몇 시간째 고요히 눈을 감은 채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구걸을 하지도 않았고 표정에서 삶의 고단함과 배고픔을 읽었을 뿐, 집을 나올 때 아기에게 타나카를 발라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카메라를 들어 찍어도 되냐 물으니 별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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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레호수 플로팅 마켓에서 만난 소녀. /김인자 시인 제공

사진을 찍게 되면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었기에 눈으로 양해를 구하고 당당히 셔터를 눌렀다. 아니 그 반대다. 이 경우 그녀에게 그냥 적선이 아니라 당당히 돈을 받아도 된다는 걸 인식시켜주고 싶어서 찍은 의도된 사진이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현금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아이들에겐 학용품, 신발, 혹은 먹을거리로 대신하는데 이들 앞에선 그냥 지갑이 열렸다. 허기보다 더 절실한 고통이 어딨을까. 거두절미 어떤 설명도 변명 따위도 필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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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을 하러 나온 어린 스님들. /김인자 시인 제공

진정한 선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어느 경전은 적고 있지 않던가. 10불짜리 기념품을 단 5불에 사는 것도 좋겠지만 등가죽에 붙은 아이의 배를 볼록 나오게 하고, 조건 없이 누군가의 하루치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일이 아니던가.

이 대책 없는 연민이 잘못이라면 나는 죄인 중에도 상 죄인이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으로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역시 국경과 인종을 초월, 아이를 보듬는 일이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