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으로만 이루어진 1층 구조 주차장 활용·낮은 건축비 등 이유 각광
건물하중 벽과 분산 못해 지진 취약… 내진설계 의무화도 2년밖에 안돼
규제 완화 앞장서 온 경기도, 공공주택 상당수 필로티 채택 '논란' 일어
국토부 1차관 안전보강 방안 주문… 만만치 않은 비용마련 숙제로 남아
또 이로 인해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내진설계가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가 하면 지방정부들도 이에 대한 정보제공에 나서기도 했다.
각광받던 주택 형태에서 지진 때문에 순식간에 핍박받는 흉물로 변한 건축구조도 있다. 바로 필로티(pilotis)다. 공간활용성이 높다고 각광을 받던 설계방식이지만, 지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단번에 미운오리 새끼가 됐다.
이에 지진에 대비해 필로티 건축을 지양하고, 현재 지어진 건축물들에 대한 안전점검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필로티는 무엇? 우후죽순 된 필로티
필로티는 건물 상층을 지탱하는 독립기둥으로, 1층에 벽이 없이 기둥만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얹는 형식이다. 건물 1층을 거의 기둥만으로 한 층이 되게 해, 그 공간을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형 생활주택이 보급되면서, 관련 건축 설계가 급속도로 늘었다.
필로티 건물은 지난 2002년 주택의 주차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1층을 기피하는 주택 수요에도 부합했다. 원룸을 중심으로 필로티 구조의 건물이 늘어났다.
1·2인 가구를 위한 도시형생활주택 보급도 이를 부추겼다. 실제 도시형 생활주택의 88%가 지진 발생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로 돼 있다는 통계도 있다.
필로티 구조가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원룸 등에 많이 적용되는 이유는, 건축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지역별 필로티 건축물 추정현황'에 따르면 국내 필로티 추정 건축물은 23만6천810동이다. 이 중 85%인 20만여동이 빌라 등 주거용이다. 경기 4만4천40동, 인천 1만4천동 등 수도권에만 10만여동의 필로티 건축물이 몰려 있다.
임 의원은 "필로티 건축물의 내진 취약성 등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큰 만큼,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했다.
# 필로티는 왜 지진에 취약한가?
필로티 구조는 지진에 취약한 대표적인 건축 방식으로 꼽힌다. 실제 이번 포항지진에서도 주택 중 필로티 건축물의 피해가 유독 컸다. 통상 건축물의 하중은 1층이 가장 크게 받는데, 그 중량의 대부분이 기둥과 벽에 분산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필로티 구조는 벽이 없다. 4∼8개의 기둥만이 건물 하중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이에 지진 등으로 인한 진동이 발생했을 때, 피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필로티 구조는 지상층에 면한 부분에 기둥과 내력벽 등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체 이외의 외벽이나 설비 등을 설치하지 않고 개방시켜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데, 1층 주차장 안쪽에 입구가 있는 경우가 많아 1층 화재 시 대피나 진입이 어렵고 지진 때 붕괴 위험도 일반 주택보다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인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 설계를 의무화했지만, 대부분의 필로티 건축이 이 시기 이전에 이뤄진 부분도 있다. 법이 소급 적용되지는 않기 때문에, 취약상태에 놓인 필로티 건축물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이다.
# 경기도에서 논란된 필로티
'필로티 포비아'까지 제기되는 와중에 따복하우스 등 경기도가 만든 공공주택 상당수가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김지환(국·성남8) 의원이 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본설계가 완료된 따복하우스 24곳 중 절반에 달하는 11곳이 필로티 구조로 설계됐다. 기존 주택을 도가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저렴하게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 41곳 역시 상당수가 필로티 구조로 다시 조성됐다.
김 의원은 "도가 조성한 공공주택 다수가 지진에 취약하다는 필로티 구조로 설계·조성됐는데 도에선 보완 대책조차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역시 필로티 구조를 장려해 왔다. 따복공동체 추진을 위해 아파트 필로티 공간을 북카페, 어린이 놀이 시설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법령 개정을 주도했던 게 경기도라는 게 도의회의 주장이다.
경기도는 게다가 지난 2015년에는 원룸형 주택의 필로티 주차장도 다른 도시형 주택과 마찬가지로 층수에서 제외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를 정부에 전달한 적도 있다. 필로티를 활용한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해당 필로티 구조를 규제개선 차원에서, 장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이병길 도 규제개혁위 공동위원장 등 위원들은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하는 현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으로 공급이 늘어나고 있지만 주차장 등 기반공간 확보가 용이하지 않아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단지형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주택과 마찬가지로 필로티 주차장을 층수에서 제외하는 인센티브를 주고 주차장 설치를 유도하자"고 건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필로티 구조에 대한 위험성이 알려지기 전의 이야기다.
# 필로티 구조 대책은 무엇인가?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은 최근 필로티 건축물의 안전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손 차관은 "이번 지진으로 필로티 건축물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기존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내진 보강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현재 필로티 기둥에 대해 강한 내력을 확보하게 하는 건축 기준은 있지만 필로티 구조 자체에 대해 별도로 내진 설계를 강화하게 하는 규제는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구조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조검증을 통해 안전 유무를 확인하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건물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필로티 건물도 내진 보강작업은 가능하다. 단 만만치 않은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는 게 숙제다.
/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