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흥얼거린 적이 있을 법 한 동요. 애잔하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오빠생각’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오빠생각의 작사가 최순애(1914~1998)와 노래의 주인공인 오빠 최영주(1906~1945)의 삶을 다룬 전시회가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수원 가빈갤러리에서 열린다.
최순애와 최영주 남매는 경기도 수원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 최경우가 소파 방정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까닭에 어려서부터 문학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초기 《어린이》 잡지를 뒤져보면 최순애 이름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문제 풀이 당선자에서부터 여러 편의 동요, 독자 담화실에 독자 투고까지 할 정도로 최순애는 《어린이》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1925년 9월 《어린이》(3권 9호)에는 최순애, 이원수 이름이 나란히 나와 있다. 그 해 11월 최순애는 동요 〈오빠 생각〉이 입선되고, 이원수는 다음 해 4월에 동요 〈고향의 봄〉이 입선된다. 입선 당시에 최순애는 12살이었고 이원수는 16살이었다. 이러한 인연은 후에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다.
최영주는 방정환의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운 일화로 유명하다. 1936년 방정환은 세상을 떠나고도 5년이 지났지만 무덤도 없이 홍제원 화장장 납골당에 있었다. 이를 가슴 아프게 여겼던 최영주는 윤석중과 뜻을 모아 월간 《중앙》에 '소파 묘비 건립 모금 광고'를 내고 여러 사람들의 뜻을 모아 망우리에 방정환 묘를 만들고 묘비도 세웠다.
1937년,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수원에 있는 선산을 두고 소파 묘 아래쪽에 아버지 산소를 마련했다. 그 뒤 1945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자신도 “존경하는 선배 소파의 밑에 묻어 달라”라는 유언에 따라 방정환 옆에 묻혔다.
편집의 귀재라고 칭송을 얻은 그였지만 1941년 1월부터 1941년 8월까지 월간 잡지 《신시대》 주간으로 활동하는 동안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과 황민화 정책,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지원병 제도를 선전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언론/출판 부문에 포함되었으나 생전에 그가 보여준 이력과 대비되는 8개월간의 행적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주최한 ㈜더페이퍼(대표 최서영)는 지난 2013년 ‘골목잡지 사이다’> 매향동(7호) 편을 통해 최순애를 소개한 바 있고, 올해 수원문화재단 ‘우리 동네 라이브러리 지원 모집’에 선정되면서 이번에 더욱 깊이 있는 결과물을 내놓게 됐다.
/강희기자 hika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