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화려한 경기도 천번째 생일아닌
31개 시군 도민 이야기로 직접 '상 차리기'
풀뿌리 민주주의 '거대한 실험' 여정 끝내
내가 사는 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
지역사회의 바람·대안 토론 '성찰의 장'
'마을'에 관심 생겨…더 많은 참여 필요
후손에 물려줄 미래 위한 현재 과제 '고민'
의견 공유·숙의·이해 통한 공통의제 도출
'민주주의 향한 플랫폼' 정치참여 열정 커
경기도 천 번째 생일상은 경기도민이 직접 차리자는 것이다. 도민이 살아온 과거를 담고, 현재의 고민을 녹이면서 꿈꾸는 미래를 얹어, 도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천 번째 생일상을 차리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시끌벅적 하고, 휘황찬란한 생일상을 차리는 것이 쉬웠을 게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31개 시군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도민의 일상을 파고드는 일은 참 어려웠다. 시간은 부족했고, 이것이 도민의 보편적 생각이라 자신 있게 말할 만큼 많은 수의 도민을 만나지 못했다.
# 7 >에필로그<
그럼에도 지방자치제의 기본 이념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리를 원칙대로 행했다는 점에서 이 도전은 의미가 있다. 어느 지자체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거대한 실험'이었다. 조각조각 나뉜 경기도 지역을 일일이 찾아가 '관(官)'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민(民)'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선 폭포수 마냥 도민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쏟아진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해 공통의제로 만들어 가는 것도 도민의 몫이었다. 나뿐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도 듣고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공감대를 찾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것은 '듣는다'는 행위의 힘을 증명하는 현장이었다.
워크숍 현장을 취재하며 많은 수의 도민이 그 과정을 즐겼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처 기회가 없었을 뿐, 우리가 만난 도민들 대부분 새로운 경기 천년을 이끌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듯 보였다.
이제까지 수렴한 다양한 도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10여 가지 새천년의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유쾌한 테이블' '도민창의대회' 등 열정 넘치는 대규모 워크숍이 남았다.
경기천년플랫폼 사업을 진행하는 경기문화재단 황순주 문화사업팀 차장은 "우리의 목표는 경기도의 새 천년을 열어갈 문화동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과정을 통해 새 천년이 꿈꾸는 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도시를 가꾸고 문화를 창출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문화, 숙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며 "이 과정이 대단히 실험적이고 현장중심이라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후의 정책 생산, 지원프로세스, 결과 환류 등의 체계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기획을 마무리하며, 경기천년 플랫폼의 성과와 과제를 고민한다. 그 고민을 모든 과정을 이끌고, 뒷받침했던 주역의 목소리를 통해 공유한다.
박현주 씨는 남양주에 사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가는 워크숍에 참가했다. "올 한해 아이들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마을 역사책 만들기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고, 직장 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처음으로 지역사회에서 활동했다. 그 인연으로 주민자치위원장님의 추천을 받아 이번 워크숍에도 참가했다."
워크숍에 참가하기 전, 박 씨는 '경기천년'을 고민하며 정책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는 "13년 째 살고 있는 남양주는 삶의 터전이면서, 우리 아이들에겐 고향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 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몫이라는 경험을 했다. 통계자료, 행정자료에 연연하지 말고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료로 구축하는 일이 그래서 꼭 필요하다"며 편찬위원회를 통해 발간한 마을 역사책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참여를 넘어 정책까지 구상한 이유를 묻자 "시민들이 지역사회의 바람을 말하고, 대안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 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워크숍에 참석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경험을 녹여 현실적 대안을 제안하고 같이 고민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워크숍에 참여하며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동반했는데, 이를 두고 매우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워크숍을 통해 경기천년에 관심을 갖고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로서, 마을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자리이기도 했다"며 "이 자리에서 경기천년의 정책이 어떻게 수렴되고 계획되며 수립되는지,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꼭 경험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이 소중한 경험이 지속되길 원했다.
그는 "작게나마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내 몫을 하고 싶다"며 "이런 활동을 하고 보니, 시민들이 직접 의견을 내는 자리들이 꽤 있더라.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나처럼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이번 워크숍도 홍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됐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참가했을텐데, 광범위하고 폭넓게 시민들이 이런 자리에 나와 의견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는 경기천년 플랫폼 중 찾아가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설계한 퍼실리테이터다. 일반에겐 생소한 개념인 퍼실리테이터는 회의, 워크숍 등을 통해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때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의견을 토론하고 수렴해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중재하는 역할이다.
이번 워크숍도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컸다. 일면식도 없는 시민들이 정해진 시간에 경기천년 미래를 구상하고 결론을 도출했다.
그는 "현재 삶의 만족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배제하고 후손에게 어떤 미래를 남겨주고 싶은지를 구상하는 건 누구나 자신의 이익에 상관없이 고민할 수 있는 공감대 높은 질문이다. 꿈꾸는 미래의 상이 결정되면, 이를 위해 필요한 현재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순서로 진행했다"고 프로그램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방식 덕분에 개인의 이익보다 모두의 행복이 우선되는 비전들이 많이 도출됐다.
주 대표는 이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제시된 의견을 수렴하고 단계마다 그 결과를 공유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크숍에서 각 팀별 1차 의견을 모아 대표 의견을 정리하고, 대표의견을 모아 의견을 공유하고 공통 의제를 합의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모여서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가 공유하고 숙지하며 이해하는 과정은 시민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확연히 드러났지만 시민들은 이미 나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히 높아졌다. 반면 고전적 방식의 다수결이 과연 시민에게 만족을 줄 것이냐는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며 "다수결로 최종 결론이 나더라도 그전까지 치열하고 합리적인 숙의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은 시민들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가 바라는 민주주의다. 경기문화재단이 시도한 경기천년 플랫폼은 아주 기초적이지만, 시대가 바라는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적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회성 쇼'로 끝나는 것을 경계했다. "31개 시군을 돌아보니,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각 시군의 제안과제가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평범하지만 직접적인 도민의 언어이기 때문에 충분히 정책적 가치가 있다.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꾸준한 활동을 통해 데이터를 쌓아가는 것이 새로운 경기천년을 짓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