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 개성 주변부 12개현 하나로 묶어
오랫동안 분열된 영토·문화 통합 중심 역할
조선시대 들어 사회개혁·시대정신 꽃 피워
아파트·공장 개발… 눈앞 이익만 쫓은 현대
삶 윤택해졌지만 누구도 정체성 고민 안해
기록지 않는 전통·문화·일상 점차 잊혀져가
철저한 자기반성 '새로운 천년' 여는 첫걸음
'성종6년(987) 5부의 방리(坊里)를 갱정(更定)하였고, 14년(995) 개성부(開城府)를 만들어 적현(赤縣) 6곳, 기현(畿縣) 7곳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현종 9년(1018)에 부(府)를 폐지하고, 현령(縣令)을 설치하여 정주(貞州)·덕수(德水)·강음(江陰) 3개 현을 관리하게 했다. 또 장단현령(長湍縣令)에게 송림(松林)·임진(臨津)·토산(兎山)·임강(臨江)·적성(積城)·파평(坡平)·마전(麻田) 7개의 현을 관리하게 했는데, 모두 상서도성(尙書都省)에 직속시켰으니 이것을 경기(京畿)라고 한다'
-고려사 권 56, 지리지 '왕경 개성부' 中에서
# 경기천년의 역사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경기정명 천년'의 해다. 그 유래는 앞서 밝힌 고문에서 비롯됐다.
'고려사' 권 56, 지리지 왕경 개성부에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고려의 도성이었던 개경을 둘러싼 외곽지역(개성, 정주, 덕수, 강음, 장단, 송림, 임진, 토산, 임강, 적성, 파평, 마전 등 12개 현)을 묶어 정식으로 '경기'라 칭했다고기록했고, 이것이 천년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이 당시 고려의 경기는 지금의 경기도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오히려 지금의 경기도는 조선에 이르러 수도를 천도한 이후 한양을 중심으로 재편된 지역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고려시대의 문헌에서 지칭된 '경기'에서 작금의 '경기천년'의 의미를 찾는 것은 그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고려 태조 왕건이 천명한 건국 이념은 '일통삼한(一統三韓)'이다. 고려는 조각조각 나뉜 후삼국을 통일해 성립된 국가다. 오랜 시간 분열됐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일은 고려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고려가 추구한 통합의 가치는 한가지 틀에 갇혀 사회를 통제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고려사회가 추구한 통합은 다원성을 기반으로 개방적이면서 변화에 유연했다.
'경기'라는 통합된 지역구조를 설정한 것도 고조선 이후, 삼국시대와 남북국 시대, 후삼국 시대 등 오랫동안 분열해 온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각 지역과 민중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중앙의 통치력을 효과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려의 경기가 분열된 땅을 통일하고 민중을 통합하는 기제였다면, 조선의 경기는 수도 한양과 왕실을 지원하는 기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조선의 정신을 선도하는 중심역할을 했다.
특히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개혁을 주도했던 학문들이 경기도에서 탄생했다. 파주의 율곡 이이는 그 대표주자다. 율곡은 '동호문답'에서 200년 조선사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조선의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또 '만언봉사' '육조계' '시폐칠조책' 등을 통해 양역변통을 통한 신분제 완화와 수미법, 호포제 같은 개혁제도를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완벽한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조선에서 대단히 파격적인 제안들이다.
경기도 땅에서 꽃피운 학문은 곧 '시대정신'이었다. 뚜렷한 현실 인식과 철저한 자기 반성,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의 희망과 대안을 고민하고 제시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경기도의 정신이다.
# 경기도를 기록한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경기도는 시대정신을 고민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쳐 버릴 뿐 돌아보지 않았고 그저 눈 앞의 이익만 쫓아 앞만 보며 달렸다.
서울에서 떠밀려 내려오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자연을 훼손하고 택지를 개발해 아파트를 지었고, 시커먼 공장단지도 서울과 인접하고 국가 산업 발달에 도움이 된다면 무분별하게 세웠다.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자본의 발전을 이룬 지역도 있지만, 여전히 낙후되고 뒤처진 지역이 공존한다.
윤택해졌지만 경기도의 정신과 정체성은 없다. 천 년의 경기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누구도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았다.
새 천년을 시작하는 경기천년은 철저한 자기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사라져 버린 것들과 곧 사라질 위기에 있는 경기도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철저하게 기록하고 복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건 세계적 추세다.
이미 수많은 선진국에선 세계지식재산권기구를 중심으로 자국의 전통 지식과 유산을 보호하는 데 힘쓰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아예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해 독자적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활용한다.
굳이 다른 국가의 예를 들지 않아도 된다.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누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얼마 동안 일했고, 얼마의 삯을 받았는지까지 기록된 그 꼼꼼함 때문이다. 결국 기록하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생략된 경기천년은 그저 구호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록해야 할 것이 많다. 청자와 백자, 나전칠기, 농악 등 경기도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중에는 구전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는 것들이 많다. 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문화재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경기도의 근현대사이기도 하다. 기록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동두천의 미군기지, 기지를 둘러싸고 번성했던 클럽과 기지촌, 인천과 수원간 소금 등 자원을 실어나르던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 등은 목적을 잃고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 중이다.
점차 줄어드는 5일장, 동두천 양키시장, 안성 우시장, 성남 인력시장, 평택 국제시장 등도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점점 빛을 잃고 퇴색돼 갈 것이다. 이뿐 아니다.
연천 UN화장장 시설이나 비무장지대 안 대성동 마을 등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공간도 기록해야 할 시점이다. 이들 모두 경기도가 지나온 흔적이고 거대한 역사다,
경인일보는 올해 새 천년의 경기도를 마주하며, 지나쳐 버린 경기도의 모습을 기록할 예정이다. 사라져 버린 역사를 되짚고,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의 가치를 되찾아 줄 계획이다. 지난한 과정일테지만, 희망찬 새 천년의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