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개 역중 66개 역은 설치 안했거나 작동안해
5년간 96명 사망·70명 부상 안전사고 쏠림현상
교통약자·음주후 부주의 폭넓게 손배책임 인정
공사작업 '현실적 고충' 작년 100% 완료 못지켜

미설치역 선로당 안전요원 2명뿐 실효성 논란
내달까지 모든역 가동… 현실적 보완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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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현장에서 바뀐 것은 거의 없는 상태다. 광역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안전'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는 스크린도어 설치로 또 한 번 유예됐다.

지난 2015년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공단)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2017년까지 총 139개 역에 이르는 모든 광역철도역에 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을 설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에서 투신사고가 잇따르고, 기한 내 스크린도어 설치는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토부는 2017년내 '100%' 설치 완료를 공약했다.

하지만, 2018년 1월 현재 139개 역 중 66개 역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설치됐지만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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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신사고 몰리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

지난해 8월31일 안산선(4호선) 중앙역에서 A(22·여)씨가 선로에 스스로 뛰어들어 오이도 방면으로 향하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같은 달 2일 비슷한 투신사고로 50대 남성이 사망한 지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4개월 후인 12월에는 80대 남성이 선로에 뛰어들어 진입하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한 해 같은 역에서 3번의 투신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중앙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다.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인 초지·수리산역(안산선)에도 각각 2건과 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2017년에만 총 6건의 광역철도역 투신사고가 잇따랐다. ┃표 참조

4일 자유한국당 박완수 국회의원이 국토부와 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2~2016년)간 투신·추락 등 승강장 안전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총 96명이다. 부상자 70명까지 포함하면 사상자는 모두 166명에 이른다. 지난해는 8월 기준 8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문제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이 이미 투신사고 빈발지역으로 낙인됐다는 것. 이로 인해 미설치 역이 주소지 근처가 아니더라도, 투신을 하기 위해 미설치 역을 찾는 경우도 발생했다. 실제 지난해 8월 중앙역에서 투신한 A씨의 주소지는 안산시가 아닌 서울시였다.

경기도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장소와 시간 등은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비슷한 장소에서 연속된 투신사고가 잇따르는 건 넓게는 '베르테르효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출퇴근26
지난해 5월 출근과 등교를 앞둔 승객들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승강장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경인일보DB

# 교통약자 보호 못하는 정부

지난 5년(2012~2016)동안 '지하철 추락 사상사고' 현황을 보면 총 25건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3명이 사망하고, 22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것은 사망하거나 다친 25명 중 10명이 시각장애인이거나 (전동)휠체어를 타는 교통약자였다.

'시각장애인 추락'이 2건, 휠체어 조작 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8건이다. 나머지는 술을 마셨거나,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 결국 스크린도어 설치 없이는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안전은 담보할 수 없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 이러한 사고가 개인의 부주의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급 시각장애인인 B씨가 선로로 추락해 한국철도공사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법원은 "스크린도어 미설치 등 장애인에 대한 안전조치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책임이 있다고 보아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또 같은 해 교통약자가 아닌, 음주 후 부주의로 인한 추락사고에 대해서도 법원은 "추락사고를 가장 잘 예방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며 철도공사 측에 일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스크린도어 미설치에 대한 안전책임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도어 설치 안하나, 못하나

각종 투신·추락사고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철도역 스크린도어 설치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

사실 국토부와 공단의 '2017년' 설치완료는 무리한 계획이었다. 사고가 잇따르자 부랴부랴 당초 설치계획을 6년이나 앞당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공단이 두 차례에 걸친 공언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치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공단 측은 공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제 설치작업은 협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다 보니, 많은 노동자를 투입한다고 해서 일의 효율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작업은 열차 운행이 모두 종료된 새벽 시간 3~4시간 정도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스크린도어 가동에 필요한 '비상전원 공급장치' 납품업체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악재도 겹쳤다. 이로 인해 53개 역은 스크린도어 설치를 완료하고도,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단 관계자는 "군포역 등 53개역은 비상전원 공급장치 등이 설치되면 즉시 시운전을 시행하여 2월까지 정상가동하고, 승강장 구조보강공사 등이 추진 중인 13개역은 2월부터 순차적으로 정상가동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유예된 안전 지킬 방안은

광역철도 모든 역에 대한 스크린도어 설치완료와 가동은 다음 달 말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건 계획보다 늦어진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투신·추락사고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다.

국토부와 공단은 지난해 1월부터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승객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에 승강장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난해 발생한 대부분의 투신사고는 현장에 '안전요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것이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실제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의 안전요원은 선로 당 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10량에 달하는 열차 구간을 단 2명이 맡아서 투신·추락예방 등 안전관리를 하고 있어 스크린도어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만이라도 이에 대한 보완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갑자기 뛰어드는 사람들을 막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배치된 안전요원을 제외하고도 공단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안전관리도 진행하고 있다"며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