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적은 대구·광주·대전 '고법' 있고 인천 없어
2심 받으려 해마다 2천건 이상 '서울 서초동 원정'
옹진·강화 섬 시민들 최소 하룻밤 묵어야해 불편
시간·비용 사회적 손실 커 기록이관 분실 위험도

고법, 인력·예산등 번거로움 '원외재판부' 현실적
정치권·시민단체 설치 목소리 불구 '제자리걸음'
"재판받을 권리위해 형사부등 5개 꼭 필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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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00만명 돌파로 대한민국 제3의 도시가 된 인천. 최근에는 인천의 경제 규모가 부산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제2의 도시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외형적으로도 팽창하고 있는 인천이 사법 행정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인천보다 규모가 적은 대구, 광주, 대전에도 있는 고등법원이 인천에는 없다.

인천지역 시민사회 단체와 법조계는 서울고법의 일부 재판부라도 인천지법 내에 설치해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18년 인천 지역 법조계의 화두로 '서울고법 원외재판부 유치'가 오르고 있다.

'삼세판'. 흔히 가위바위보나 내기놀이를 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재판에도 '삼세판'이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 사법체계가 도입된 이후 모든 소송 당사자는 1심(지방법원), 2심(고등법원), 3심(대법원)까지 3번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인천 시민들은 인천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나서 2심 재판을 받으려면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 서초동으로 가야 한다. 인천에는 고등법원이 없기 때문.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인천지법의 2016년 전체 사건은 부천지원을 포함해 137만6천건으로 같은 서울고법 관할 지방법원 9개 중 수원(276만8천건), 서울중앙(192만7천건) 다음으로 많다. 관할 인구는 인천시 전역과 부천시, 김포시를 합쳐 415만7천명에 달한다.

지방법원 1심에 불복한 모든 항소심 사건이 서울고법으로 보내지는 것은 아니다. 1명의 법관이 1심 재판을 진행하는 이른바 '단독 사건'의 경우에는 같은 지방법원 항소 합의부가 2심 재판을 맡는다.

서울고법으로 가는 1심 사건은 1명의 부장판사와 2명의 배석 판사 등 총 3명의 법관이 심리하는 '합의부 사건'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최근 10년간(2007~2016년) 인천지법의 1년 평균 형사합의부 사건은 1천632건이다. 여기에 평균 항소율 61.7%를 적용하면 매년 1천여 건의 형사 항소심이 서울고법에서 처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사와 행정, 가사 사건 항소심까지 더하면 매년 2천건 이상의 소송 당사자들이 항소심 재판을 위해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송당사자는 형사사건의 피고인, 민사·행정의 원고, 피고이지만 증인, 변호사, 방청자 등 관련자를 모두 더하면 그 숫자는 소송 건수의 최소 2~3배에 달한다.

이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비용과 시간은 큰 사회적 손실이다. 특히 옹진군과 강화군 섬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소송을 위해 최소 하룻밤을 육지에서 묵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인천에 고등법원이 설치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고,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요인 탓에 쉽게 동의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천에서는 2015년부터 서울고법 원외재판부 유치 바람이 불고 있다.

원외재판부는 쉽게 얘기하면 고등법원의 소재지 이외 지역에 항소심 재판부를 별도로 설치해 그곳에서 고법 관할 사건을 담당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서울고법 산하에서는 춘천지법, 부산고법은 창원지법, 광주고법은 제주·전주지법, 대전고법은 청주지법에 각각 원외재판부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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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법 전경(왼쪽). 유정복 인천시장·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원외재판부 설치 청원'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지방변호사회 제공

인천지방변호사회는 2015년 원외재판부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원행정처와 지역 정치권에 원외재판부 유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도 힘을 보태 10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당시 유정복 인천시장이 직접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서명서를 전달했다.

원외재판부 설치는 인천지법에서 가정법원, 등기국이 분리된 2016년 현실화되는 듯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진행이 없는 상황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가정법원으로 이동한 가사부와 소년부 법정과 사무공간을 활용하면 공간 및 비용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다.

원외재판부가 설치되면 사법 접근성 향상으로 인한 이득이 숫자로는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우선 소송 당사자들의 시간·비용이 절감된다. 적어도 서울에 가야 하는 거리 문제 때문에 항소를 포기하는 사태는 없어진다는 얘기다.

법원 내부적으로도 항소기록을 인천에서 서울로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건비, 배송비용이 크게 절감될 뿐 아니라 분실·파손 등 보안 위험도 사라진다. 확정된 재판의 기록 보존도 원칙적으로 1심 지방법원 또는 검찰이 해야 하는데 이런 기록 이관의 불편도 덜어진다.

이밖에 형사사건에서 구속된 피고인이 항소할 경우 인천구치소에서 다른 구치소로 이감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특히 인천에 근무하는 법관들이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재판부에 의한 현장검증이 용이해지고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판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원외 재판부 설치 위해서 선결돼야 하는 과제는 있다. 구속된 피고인을 항소심까지 수용할 수 있는 구치소 시설의 확충과 인천지법 내 한정된 법정과 사무공간 문제 해결 등이다.

인천변호사회는 형사부 2개, 민사부 2개, 특별(행정)부 1개 등 5개의 원외재판부 설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최소한 형사, 민사 1개씩이라도 우선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원외재판부 유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천변호사회 소속 배영철 변호사는 "서울, 부산에 이은 전국 3대 도시에 고등법원도 없고 원외재판부조차 없다면 인천시민들의 상실감이 클 것이다"며 "시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서 원외재판부 설치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