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개 주 가운데 면적·인구 가장 작은 자를란트주
부유한 주 정부서 열악한 지방 '수평적' 재정지원
연방정부 '수직적' 보충교부금까지 받을 수 있어
'지원은 하되 간섭 않는다' 철저한 분권 원칙아래
맞춤식 복지·교육 투자 부채상환 사용 '풍요' 누려
독일 서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자를란트 주는 독일의 16개 주(州) 가운데 도시주를 제외하곤 면적과 인구가 가장 작다. 프랑크푸르트가 있는 헤센 주와 같이 금융과 산업의 중심지도 아니고,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 주처럼 뛰어난 문화유산도 물려받지 못했다.
거기다 프랑스와 국경이 맞닿아 있어 20세기 초까지 수차례 영토 분쟁의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의 삶은 항상 불안했고, 산업이라고는 오래된 광산개발 뿐이었다.
하지만 자를란트 주는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독일의 어느 주보다 풍요로운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를란트 주가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독일 특유의 지방재정조정제도(Finanzausgleich) 덕분이라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연방국가인 독일은 지역 간의 경제력 차이와 지방정부간의 재정력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재정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주정부간의 '수평적' 재정조정제도가 있다. 쉽게 말해 부유한 주정부가 가난한 주정부에 각종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주민 한 사람의 재정력이 전국 평균의 70% 이하인 주는 전국 평균의 91% 수준까지 재정조정이 이뤄진다. 또 주민 1인의 재정력이 71~80%인 주는 93.5%까지, 81~90%인 주는 96% 수준까지 상향적 재정조정이 이뤄진다. 재정력이 전국 평균(100%)에 가까운 주는 재정조정대상에서 제외된다.
재정력이 105~110%인 주는 104%까지, 재정력이 111~120%인 주는 106.5%까지, 121~130%인 주는 109% 수준까지 하향적 재정조정이 이뤄진다. 한마디로 독일의 재정분권 정책은 '균형을 위한 분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자를란트는 2016년 기준 3억2천900만 유로의 조정교부금을 다른 주들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난민의 급격한 유입과 대학과 공공병원 등의 시설확충, 주 경찰의 보호장비 구, 종일학교의 보건교사 확충 등 막대한 비용을 추가지출하면서 재정위기가 닥쳤다고 한다.
이처럼 수평적 재정조정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재정상황이 어려워지면 연방정부가 나선다. 연방정부에서 지방정부에 보충교부금을 지원하는 것인데 '수직적' 지방재정조정이라고 표현한다. 이 역시 주민 한 사람의 재정력과 재정수요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지방재정조정이 가져온 변화
자를란트 주는 연방정부나 다른 주로부터 지원받는 재원을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분권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조정교부금을 주로 공공부문에 사용해왔다.
주민들의 주거안정을 책임지는 공공주택,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수영장 등 체육시설, 그리고 주민 서비스를 보강할 수 있는 공무원 증원 등이 그것이다.
볼프강 휘스터 주정부 재정국장은 "자를란트 주는 연방정부가 주는 보충교부금의 20%를 매년 순부채를 상환하는데 사용하게 되며, 그 밖에 주민들의 복지와 교육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업에 조정교부금을 주로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재정조정제도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한다. 휘스터 국장은 "주 간의 재정조정으로 인해 소위 '부자 주' 주민들의 반감이 커져 헌법적 분쟁이 생기는 등 지방재정제도에 대한 불만도 많다"며 "주정부들이 과세 체계의 개편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을 기준으로, 독일의 16개 주들 중 전국 평균재정력 100%를 초과하는 주는 헤센, 바이에른, 바덴-뷔르템베르크, 함부르크 등 4개가 있고 이들이 다른 주에 조정교부금을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12개 주는 전국 평균재정력 100% 이하 수준에 머물러 조정교부금을 받았다.
특히 도시주인 베를린은 동-서 베를린 통합의 후유증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어 재정력 지수가 전국 평균의 68.1%에 불과하다. 이밖에 브란덴부르크, 작센, 튀링겐, 메클렌부르크-포어폼머른, 작센-안할트 등 주로 옛 동독지역 주들이 조정교부금의 수혜를 받고 있다.

소도시 하이델베르크 주민공유정책 최우선 반영
'대학·학문중심' 정체성 지속 '세계적 도시' 거듭나
獨, 헌법을 통해 광범위·효율적인 '연방제' 보장
독자적 입법·재정·조직권 '정책 자율성' 이어져
수도 집중현상 차별 없이 지역마다 '경쟁력' 갖춰
■잘사는 지방도시의 상징, 하이델베르크
인구 15만 명의 소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도시'가 된 것은 지방분권의 역할이 컸다. 하이델베르크의 도시 정책들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민과 지방정부가 함께 공유하는 가치관이 최우선으로 설정된다.
하이델베르크 주민 가운데 학생이 3만여명, 교수와 교직원이 1만5천여명에 달할 정도이니 모든 도시 정책은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가 운영 주체이다. 물론 연방정부로부터도 약간의 지원은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책과 재정은 주정부가 책임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비롯해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모든 대학은 2017년 가을학기부터 외국인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고 있다.
1인당 1천~1천500유로 정도여서 학생들에게 크게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지만 외국인 학생들의 중도이탈을 막기 위해 독일의 주 가운데 처음으로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이 자리잡혀 있다보니 우리나라처럼 교육부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대학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지방분권 원칙과 성숙한 지방자치, 그리고 주민참여가 이룩한 결과물이 바로 하이델베르크와 같은 '잘사는 지방도시'인 것이다. 지방도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수도권의 도시 형태나 문화를 따라가거나, 자신들의 전통을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독특한 지방자치를 자연스럽게 실현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도 '대학과 학문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발전시킨 결과 최근엔 유명 '관광 도시'로 거듭나면서 주민들은 새로 생긴 일자리와 소득증대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도 지역 사회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 홍보 담당인 헬가 브리츠씨는 "독일의 대학들은 천편일률적인 공통의 지향점은 없다.
대학이 소재하고 있는 지역의 전통이나 특수성, 경제상황 등이 반영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예를들어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2011년 '가족 친화적' 대학으로 인증받았는데, 이는 아무리 치열한 학문 활동을 하더라도 삶의 기본적인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대학과 지역주민들은 시설과 자원을 거리낌 없이 공유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도 10여명의 어린이들이 중세 귀족 복장으로 대학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새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대학 직원들은 모든 공간을 개방해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맞고 대학과 도시의 전통문화를 가르쳤다.
독일에선 지방이 수도권에 비해 차별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기업이나 유명대학들이 수도권이 아닌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고, 각 지방이 갖고 있는 경쟁력과 장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헌법을 통해 광범위하고 효율적인 지방분권을 보장하고 있어 지방정부가 입법·재정·조직권 등을 독자적으로 갖고 있으니 이는 곧 정책의 자율성으로 이어진다.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지방이 수도보다 더 잘 살고 소득수준도 높다. 수도와 거리가 많이 떨어진 것이 약점이 아니고 수도권 집중 현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수도권인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가 과거 경제력이 약했던 동독지역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철저한 연방제, 즉 지방분권에 따른 결과물이다.

■"내 지역의 미래는 내가 설계한다"
독일의 시민예산은 참가형 예산이라고도 불린다. 경상경비를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작업에 주민의 의견을 반영시키는 시스템이다.
주민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주민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정책이나 주민들에게 불필요한 시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주민은 행정을 불신하게 되고 정치에도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예산 계획작성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주민을 주체적으로 예산의 설계자로 참여시키고 있다.
/한신협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