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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측 '국립예술살롱전 매년 초청' 선언… 예술사조로 인정
고군분투 긴 세월 정부·대학 관심 이제야 생겼지만 달갑지 않아
올해 말 중국대전 출품… 中서 영향받은 미술 中에 자랑하는 격

"이제 다른 것은 없어요. 내가 재현한 고려화불 전부가 루브르 전시 도록에 수록돼 계속 남을 수 있다면."

7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월제 혜담(사진) 스님은 조금 야윈 듯했다. 그간의 일을 들어보니 기쁜 일이 많은데 어쩐지 스님은 지쳐보였다. 스님은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국립예술살롱전에 '수월관음도 팔부 성중상' '백의관음보살상' 등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리고 올해는 대상 격인 '프랑스 루브르 명예훈장'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루브르측은 국립예술살롱전에 매년 고려불화를 초청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묵묵히 걸어온 평생의 성과가 이제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작은 체구의 스님 혼자 이만큼의 일을 해내기까지 얼마나 고되었을지, 지친 그의 얼굴에서 그간의 고행을 읽을 수 있다.

2017년 3월 수월관음 팔부성중상 104x161.2cm

"무슨 상을 주는지 그런 건 나에게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가톨릭, 기독교 같이 타종교를 믿는 유럽, 미국 등 해외 국가에서 우리의 고려화불을 하나의 예술사조로 인정해준 것이 기쁩니다." 국립 살롱전에 매년 고려불화를 초청하겠다는 것은 회화, 조각, 서예, 펜화 등 살롱전의 공식 장르로 인정받은 것과 같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은 종교를 뛰어넘어, 빛나는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아봐주었다.

혜담 스님의 희생 덕에 달라진 것은 이것 말고도 많다. 2014년부터 4년 연속 루브르 살롱전에 초청받아 작품을 출품해왔고 매년 수상을 해온 스님의 고려불화는 살롱전의 전시 도록에 기록되고 있다.

스님은 언젠가 도래할 자신의 사후에 고려불화의 맥이 끊기는 일이 가장 두렵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래서 저 먼 이국땅에서라도 고려불화가 역사로 기록되는 것에 스님은 안도하고 있었다.

"내 작품을 들고 해외에 나가면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동안 일본인들이 루브르를 비롯해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고려불화를 전시하며 자신들의 것인양 행세해왔거든요. 우리 민족의 문화인 건 맞지만, 고려화불을 지켜온 건 일본인들이니… 그래도 내가 평생을 바쳐 고려화불을 그린 덕에 이제 한국의 문화라는 걸 많이들 인식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 전시도록이라도 (내가 재현한) 현존하는 고려화불이 수록되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지 않았나 싶어요."

2017년 6월 불모 월제 혜담의 삶 창작 88-127cm
2017년 6월 불모 월제 혜담의 삶 창작(88-127cm)
스님의 활약(?)이 알려지면서 국내에도 고려불화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고, 일부 대학에선 학과도 생겼다. 

 

정권이 바뀌고 정부에서도 스님에게 관심을 표하지만, 이 모든 것이 스님은 썩 내키지 않는다.

"해외에 한번 초청돼 나가려면 보통 비용이 드는 게 아닙니다. 불자들이 도와주지만 나는 오히려 힘들게 사는 그들이 안쓰러워 그 도움을 받기가 미안해요. 그래도 고려화불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초청전에 나서는데, 액자값이 비싸서 액자도 못하고 작품을 거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만큼 너무 지쳤고 힘이 듭니다. 이제와서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한들, 그것이 반갑겠습니까."

스님은 그저 '역사가 말해주지 않겠나'라고 여러 번 말했다.

"돌아보니, 고려화불에 미쳐 젊어서부터 에너지를 너무 방출했어요. 참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오직 우리 문화유산을 재현하는 일에만 몰두했어요. 이것이 우리 역사고, 찬란한 문화 유산이니까 역사를 잃어버린 시대에 나라도 역사를 되찾아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쳤다고 말하는 스님은 그래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을 작정이다. 올해 말 중국 계태사의 초청을 받아 기획 중인 중국대전에 60~80여 점의 작품을 출품할 계획이다.

올해는 법문도 줄이고 고려불화를 완성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영향을 받아 고려에서 꽃을 피운 게 고려화불인데 천년이 지나 내가 역으로 중국에 자랑하는 격입니다.중국인이 놀랄만한 수작을 선보여야죠." 빙그레 웃는 스님의 얼굴을 차마 바로 볼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