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염력

연상호 감독 '초능력' 소재 도전
평범한 남자의 영웅담 코미디로
철거촌 배경 날카로운 시선 여전
약해진 감정묘사 개연성 아쉬움

■감독 : 연상호
■출연 : 류승룡, 심은경, 박정민, 김민재, 정유미
■개봉일 : 1월 31일
■코미디 / 15세 이상 관람가 / 101분

염력 포스터
연상호 감독이 '좀비'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자 영화팬 상당수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한국에서 월드워z 같은 좀비물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반응은 뜨거웠다. 애니메이션 감독에서 첫 실사 영화 데뷔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감독이 됐다. 그리고 2018년 새해, 그는 또 새로운 것을 들고 과감하게 관객 앞에 섰다. 영화 홍보 카피 그대로 하자면, '이번엔 초능력이다'.

영화는 어느 날 약수물을 잘못 먹고 초능력을 갖게 된 평범한 남자 석현(류승룡)이 위기에 처한 딸 루미(심은경)를 구하기 위해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영화는 판타지물의 성패를 가르는 CG기술도 특별히 흠 잡을 곳 없이 매끄럽게 표현됐다. 서양의 히어로처럼 완벽하게 하늘을 날거나, 능력을 능숙하게 부리지 못하는 것도 갑자기 초능력을 얻게 된 평범한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을 현실성 있게 부각하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특히 코미디를 표방한만큼 100여 분의 러닝타임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석현이 초능력을 부릴 때 짓는 익살맞은 표정이나 몸짓은 누구나 한번쯤 따라하고 싶을 만큼 코믹하다.

'돼지의 왕' '사이비' '부산행' '서울역' 등 어둡고 신랄한 분위기의 전작을 생각한다면, 연 감독이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 소재와 코미디를 버무렸음에도 사회를 바라보는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은 버리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고 권리금마저 못 받게 된 상가의 세입자들이 철거민이 되는 과정, 석현의 초능력으로 쌓아올린 쓰레기 탑 위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철거민을 상대로 철거용역과 경찰이 뒤섞인 이상한 집단(?)이 폭력을 행사하는 후반의 장면들은 서울의 용산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비현실적 소재를 다룰 땐 지극히 한국의 현실적인 소재와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감독의 소신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또 데뷔 이후 첫 악역에 도전한 홍상무 역의 정유미는 비교적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가장 뇌리에 박히는 인물이다.

맑게 웃는 얼굴로 영어 욕을 소리치며 등장하는 첫 신은 그 어떤 반전보다 강도가 세다. 트레이드 마크인 사랑스러운 얼굴을 무장한 채 사이코에 가까운 대사와 행동을 연기한 정유미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악역을 탄생시켰다.

물 흐르듯 잘 흘러간 영화지만 줄거리의 개연성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가 비범한 영웅이 되는 과정이 짧게 묘사돼 후반부 감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부녀가 화해하는 줄거리도 개연성이 약하다.

상업영화임에도 인간성의 본질을 잘 건드린 부산행에 비교한다면 오락적 측면에 더 무게가 실려 깊이가 부족하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