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 헌신중 기독교 개종 시설 운영
아내 오혜령 작가와 36년째 봉사 매진
6년전 오산 정착 복지사각 발굴 노력
오산시 원동에서 '평화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권오정 목사는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1940년대 초반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안 해본 일 없이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하던 20대 중반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게 된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바로 엘리트 미국인으로 한국에 들어와 농아·맹아들을 위한 충주성심학교를 설립하고 성당을 두 군데나 만들어 한 평생을 한국인을 위해 봉사한 조셉 보러 윌버(Joseph Borer Wilbur·한국명 옥보을) 신부였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옥 신부의 헌신적인 삶에 감화받아 권 목사는 뒤늦게 가톨릭대에 진학, 8년간의 공부 끝에 사제(司祭)가 됐다.
이후 한국의 비민주적인 정치 현실을 개탄하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들어갔고, 민주화 투쟁에 몸담기도 했다.
그러다 80년대 중반 가톨릭 체계에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옥 신부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자는 생각에 1983년부터 안양과 화성 등지에서 무의탁 노인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를 옆에서 도우며 버팀목이 돼 준 이는 아내 오혜령 작가다.
"아내는 60~70년대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였고, 당시 젊은이들을 잠 못들 게 했던 라디오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최고 인기를 누렸었다. 나를 만나며 많이 힘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는데 너무 힘든 나머지 무려 19가지 지병과 싸우다 나중엔 세 가지 복합 암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권 목사는 그런 아내를 단 한 번도 힘든 내색 없이 돌보며 늘 주변에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없는지를 찾았고 무의탁 노인과 결손가정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에 매진했다.
그리고 6년 전 우연한 기회에 오산에 정착하게 됐고 지난 2014년에는 민관협력기구인 '대원동복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에서 하기 어려운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최근 3년 동안 결식이 우려되는 독거노인, 장애인, 저소득 세대를 직접 찾아다니며 생필품과 먹거리를 제공했고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내 주변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웃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최근 심각한 취업난 등으로 인해 식사도 거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알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에서 이들을 찾아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산/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