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 개헌 투표 시작으로 30여년 외길
관리만 하던 예전엔 불법 심했지만…
선관위 권한 강화·사전투표로 진일보
무탈했던 '조기 대선' 등 기억에 남아
안정적 시스템 입증 자부심 가질만해
경기도 투표율 높지않아 어깨 무거워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들에게는 처음으로 관리한 '첫 선거(투표)'가 그렇다. 일평생 선관위에서 일한 우근학(58)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에게도 첫 선거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귀중한 조각이다.
1986년 입사한 그의 첫 선거(투표)는 대통령 직선제를 결정한 1987년 10월 27일 9차 개헌 국민투표였다(투표는 찬성·반대 의사 표시를 묻는 것, 선거는 투표를 통해 공직자를 결정하는 절차로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
두달 뒤인 12월 16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대통령을 뽑은 13대 대통령 선거는 그가 관리한 두 번째 선거였다.
7번의 대통령 선거와 8번의 국회의원 총선거, 7번의 지방선거, 40여차례의 재보궐선거. 선관위 막내 직원이었던 그가 1급 상임위원이 될 때까지 30년 넘게 치러온 수많은 선거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2018년 6월 13일 우 상임위원은 경기도선관위에서 8번째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면 31년 만에 2번째 국민투표를 지켜보게 된다.
특히 올해는 대한민국에서 선거가 실시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지난 8일 경기도선관위에서 우 상임위원을 만난 이유다.

# '1987'에서 '2018'까지
"격세지감이죠." 대한민국 선거의 산 증인으로 꼽히는 우 상임위원에게 30년 전과 지금의 선거를 비교해보면 어떻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 상임위원의 첫 선거는 혼란스러웠다. 9차 개헌 국민투표에 이어 실시된 13대 대통령 선거는 16년 만에 부활된 대통령 직선제였다. 선거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만큼 과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에는 오프라인 선거 운동만 있었으니까 후보들 간 청중들을 동원하는 형태의 '세 대결'이 어마어마했다. 몸싸움도 벌어지고 버스가 전복되기까지 했다. 유권자들도 (불법 선거 등에 대해) 죄의식을 덜 느꼈다"고 첫 선거 분위기를 회상한 우 상임위원은 "그때는 지금처럼 선관위에 감시·단속 권한이 없었다. 정말 선거를 '단순 관리'하는 일만 했었다. 제재가 미약하다보니 후보자도, 유권자들의 긴장도도 덜했다"고 말했다.
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선관위의 권한은 강화됐고 선거판에서도 금품과 청중 동원 등이 서서히 사라졌다.
1989년 선관위에서 선거범죄에 대한 단속 업무를 처음 실시하게 됐고, 1997년에서야 실질적인 단속 권한이 주어졌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사전에 투표를 해도 엄정하게 관리될 정도로 선거 분위기와 시스템이 진일보했다는 게 '선거 관리 외길'을 걸어온 우 상임위원의 자부심이다.
수십 차례 관리했던 선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를 질문하니 2014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조기대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 상임위원은 "2014년 지방선거는 사전투표가 전국 단위로는 처음 실시됐던 선거다. 수원시민이 부산에 가서 수원시장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런 시스템은 없다. 도입 전에는 제대로 관리가 될 지 의문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당연히 관리자 입장에선 긴장도, 걱정도 많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 때는 행여나 무슨 일이라도 날까 직원들과 확인하고, 또 수없이 점검하며 고생을 정말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놨다.
역사상 처음 실시된 조기 대선은 선거 전문가인 그 역시 처음 경험해보는 선거였다. 탄핵 후 사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와중에도 '장미 대선'은 많은 유권자의 관심을 받으며 무탈하게 치러졌다.
민주화의 봄이 오며 혼란스러운 첫 선거를 치렀던 만큼 촛불혁명 후 무리없이 이뤄진 조기 대선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 국가잖아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의결했고,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을 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역시 헌법 기관인 선관위 관리 하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국가가 몇이나 될까요? 그야말로 시스템으로 빠르게 안정됐습니다. 상당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제 또 하나의 선거를 준비 중이다. 전국에서 가장 유권자도 많고, 후보자도 많은데다 지역 특색도 다양해 경기도는 가장 관리하기 까다로운 지역으로 꼽힌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며 예측하기 쉽지 않은, 위법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선거 범죄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경기도의 투표율은 결코 높은 편이 아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우 상임위원의 어깨는 가볍지 않다.
우 상임위원은 "다른 건 몰라도 지연, 혈연, 학연에 얽매이는 선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의 투표용지는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까지 모두 7장이다. 6·13 지방선거와 더불어 국민 개헌투표까지 동시에 실시하는 게 확정되면 투표용지만 무려 8장이 된다.
투표용지가 많을수록 후보와 공약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한 정당에만 몰아주는, 이른바 '줄투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그가 우려하는 점이다.
우 상임위원은 "지방선거는 도선관위 입장에서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선거지만 주민들 입장에선 우리 동네를 바꿀, 내 일상을 바꿀 풀뿌리 일꾼을 뽑는 가장 중요한 선거"라며 "주민이 주인이 되는 '동네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유권자들도 후보와 공약을 세세하게 살펴 한 표를 던져야 한다. 선관위도 유권자들의 선거 편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월 13일에는 그 역시 한 명의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어떤 후보를 뽑겠냐는 물음에 "정책과 공약을 꼼꼼하게 본 다음 결정하겠다"며 빙긋 웃었다.
"선거 당일에는 선관위가 아무래도 바쁘고 긴장돼서요. 저도 사전투표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바쁘고 시간 없으셔도 어디서든 사전투표, 아시죠?"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우근학 상임위원은?
▲1959년 용인시 출생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도시 및 지방행정학 석사
▲1978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 생활 시작, 1986년 선거관리위원회 입사
▲2013~2014년 중앙선관위 기획국장
▲2015년 경기도선관위 사무처장
▲2016~2017년 충청남도선관위 상임위원
▲2018년 1월 ~ 경기도선관위 상임위원
▲2010년 근정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