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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때 맑은 경향은 시베리아 '북극 한파' 내려와 中 편서풍 막아준 덕
봄이 달갑지 않은 이유… '삼한사온' 대신 '삼한사미' 신조어까지 등장
中 공장벨트 매연·난방 가동 NOx 등 유해물질 섞여 황사보다 더 나빠
노후 화전 셧다운도 1.1%밖에 못 줄여… 시민들 '주범=중국' 인식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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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웠던 올겨울도 이제 끝자락이다. 봄기운이 서서히 움트고는 있지만, 시민들이 바깥에서 따사한 봄 날씨를 마음껏 만끽하는 풍경보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될 듯하다.

날이 풀리면 어김없이 수도권에 공습을 퍼붓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3일간 춥고 4일간 따뜻한 한반도의 겨울을 일컫는 '삼한사온'은 옛말이 됐다.

3일간 춥고 4일간 미세먼지가 극심하다는 뜻의 '삼한사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올겨울 인천·경기지역 시민들은 미세먼지로 인해 건강을 위협받았다.

다가오는 봄에도 미세먼지 걱정이 태산이지만, 정부 정책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월 15~18일 수도권지역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최악으로 치솟으면서, 이 기간 3차례나 '수도권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돼 '미세먼지 대란'을 겪었다.

정부와 수도권 3개 시·도가 공동으로 발령하는 비상저감조치의 핵심은 공공기관 차량 2부제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무료 정책까지 시행했다가 최근 폐지하기도 했다. 차량 운행을 줄여 미세먼지를 잡자는 게 수도권 비상저감조치의 취지다.

인천 이슈& 스토리  미세먼송도 G타워
쾌청한 날씨일 때(사진 왼쪽)와 미세먼지로 인해 잿빛 하늘을 보인 송도국제도시 모습.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차량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같은 국내 요인을 줄인다고 미세먼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까. 시민들이 체감하며 만들어낸 '삼한사미'란 말 속엔 고농도 미세먼지의 주범은 '중국'이라는 인식이 녹아있다.

국내 오염 줄이기에 초점을 맞춘 수도권 비상저감조치에 상당수 시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인천지역 최저기온이 영하 14.4℃까지 떨어지면서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1월 12일 인천 미세먼지(PM10) 평균 농도는 28㎍/㎥였다.

환경부 기준 '좋음'(0~30㎍/㎥) 수준이다. 이튿날인 13일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미세먼지 평균 농도도 56㎍/㎥로 높아졌고, 14일에는 '나쁨'(81~150㎍/㎥) 수준인 107㎍/㎥까지 한때 치솟았다. 이 같은 기상변화가 일어난 직후 수도권 미세먼지 대란이 이어졌다.

강추위 때는 하늘이 깨끗하다가 날씨가 풀리면 미세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흐리는 최근의 경향은 한반도에 찾아온 '북극 한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극 한파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의 고온 현상이 지속하면서 찬 공기가 북극에 머물지 못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중위도 지역으로 밀려 내려오는 현상이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겨울철에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넘어오는데, 북극 한파로 북쪽 시베리아에서 차가운 북풍이 한반도로 내려와 중국 쪽에서 부는 편서풍을 막아줬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다른 계절에 비해 미세먼지가 약해지는 5~6월에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국내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정부 차원의 연구결과가 지난해 발표되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2016년 5~6월 국내 대기질 공동조사를 진행했는데, NASA의 관측용 항공기가 서울 올림픽공원 상공에서 측정한 초미세먼지 기여율은 국내 52%, 국외 48%로 나타났다. 국외 요인 가운데 중국이 34%에 달한다고 분석됐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조사결과다. 반면 정부가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지난해 6월 한 달 동안 시범적으로 진행한 '노후 화력발전소 셧다운(shutdown·가동중지)' 조치는 미세먼지 농도를 평년대비 1.1% 줄이는 데 그쳤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유해성은 고비사막과 중국 서부지역 일대 사막에서 발생한 모래 입자인 황사보다 훨씬 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중국 베이징 인근 톈진과 허베이성 등 해안공업지대부터 중국 남부지방을 잇는 '대규모 공장 벨트'에서 내뿜는 각종 유해물질이 섞여 있다.

겨울철이면 중국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을 비롯한 '동북 3성' 지역에서 난방을 가동하는데, 여기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 같은 대기오염물질 또한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건너오고 있다.

정부가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에 대해서는 오히려 시민들이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6년 5월 포털사이트를 통해 개설된 온라인 커뮤니티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가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대촉' 커뮤니티의 회원 수는 이달 기준 7만1천명이 넘어섰다. 엄마를 뜻하는 신조어 '맘'을 붙인 아이디가 주류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회원 상당수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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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남구 주안역 앞 환경오염도 측정 전광판이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을 알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미세먼지의 주범을 중국으로 꼽는 커뮤니티 '미대촉'의 대표적인 활동은 정부에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을 요구하는 '민원 릴레이'다. 3월 1일 기준, 8천855건의 민원을 환경부나 교육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에 제기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를 못 키우겠다"며 "국제기구를 통해서, 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중국발 미세먼지를 해결하라"는 등의 호소도 있다.

활동이 활발하자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지난달 간담회를 열고 '미대촉' 회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환경부 장관 간담회 때도 정부의 부실한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청와대와 국민 간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주목받는 '국민청원'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 요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2017년 8월부터 운영한 '국민청원'에서 제기된 미세먼지 관련 청원은 3월 1일 기준 1천350여 건이다.

이 가운데 중국발 미세먼지를 언급한 청원은 절반이 넘는 746건이다. "중국산 불매운동을 하자", "명백한 중국발 미세먼지를 거짓된 연구·조사로 국민을 속이지 말라", "서해안 구간마다 바닷물로 미세먼지 씻는 장치를 개발하라" 등 정제된 의견은 아닐지라도 중국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청원들이다.

그만큼 시민들은 정부의 근본적인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