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스포츠행사 '재정악화' 악몽 반복
나가노, 봅슬레이장·점프대 '애물단지'
인천 16곳 신축… 부산 경륜장 탈바꿈
스타디움 해체후 프로축구장 좌석 검토
재활용 불가능시설 "국가가 관리해야"
세계 각국 훈련장… 수익창출 법 개정
올림픽이 폐막을 향해 달려가며 '올림픽 레거시(Olympic Legacy)'를 놓고 사후관리 문제 등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대규모 국제대회를 개최했던 몇몇 국가의 자치단체는 대회 직후 경기장 사후관리로 인한 재정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순간에 국가와 도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됐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올림픽 레거시에 대한 사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의 올림픽 레거시 현황을 살펴보고 국내 바람직한 올림픽 레거시 유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 올림픽과 올림픽 레거시
올림픽 레거시는 올림픽 유산을 뜻하는 말로, 올림픽 대회로 인해 창출되는 유·무형의 구조와 그 효과가 국가의 정치·경제·문화·환경·스포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대물림되는 현상을 말한다.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의 열정, 관중의 함성 그리고 기록과 업적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공간이기에 간직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 국제올림픽연맹(IOC)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해 지난 1996년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문제'를 올림픽 헌장에 명시했다.
IOC는 올림픽 개최 도시를 선정할 때부터 후보 도시가 제시한 '올림픽 레거시 사후 활용방안'까지 고려해 왔다.
이에 따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는 IOC에 '올림픽을 계기로 한 지역발전과 올림픽 유산의 계승, 긍정적인 올림픽 효과를 통한 개최 이후의 지속적인 발전'을 약속하기도 했다.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올림픽 레거시는 사후 운영을 통해 고용 및 소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강원도 또한 마찬가지.
도민들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염원이 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수익 창출로 인한 요인이었다. 타 지역보다 발전이 더뎌 경제적으로 소외돼 있던 강원도에 올림픽 개최는 도민의 희망이 되는 동시에 침체된 경제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됐다.
# 적자투성이로 변질된 올림픽 레거시
하지만 역대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지를 살펴보면 막대한 예산과 자원을 투자한 시설들이 국민의 체육 공간이나 시설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전시용 시설로 방치된 예가 많다.
일부 시설의 경우, 아예 유지 및 관리 자체가 어려워 정부와 지자체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실제로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많은 도시가 올림픽 개최 이후 경기장 사후 활용 실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998년도에 열렸던 나가노동계올림픽의 경우, 해당 지자체는 사후시설 유지에 대한 부담이 가중돼 재정압박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시설 관리를 직접 운영하는 나가노시는 1999년도 기준 약 12억엔을 관리운영비로 부담하고 있다. 경기시설로 이용됐던 봅슬레이 경기장과 점프대에는 시설유지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재정지출의 부담을 크게 만들고 있다.
대회가 끝난 후 이용자 수도 크게 늘지 않고 있어 계절적 요인이 따르고 대중성이 부족한 동계올림픽의 경우, 올림픽 개최 이후의 활용에 대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인천시에서는 사후관리로 인한 재정악화를 겪고 있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석호 의원(자유한국당)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신축 경기장 16곳에 지출한 관리 예산은 606억원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의 수입은 252억원에 불과해 누적적자는 354억원에 달했다. 시설물 확충 목적으로 투입됐던 비용은 약 1조9천억원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2011년 말 기준으로 인천시와 산하 공기업을 포함한 지방채, 공사채 발행 잔액이 9조3천655억원에 달하는 등 아시안게임 개최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산은 2002 아시안게임을 치른 후 시설유지에만 매년 수십억원을 쏟아붓게 되자 수익 창출을 위해 새로 지은 사이클 경기장에 194억원을 다시 투자해 경륜장을 도입했다.
하지만 개장 당해 66억원, 2004년 140억원, 2005년 115억원, 2006년 약 60억원 등 4년 사이 경기장 전환공사비를 포함해 약 600억원의 추가 적자를 기록했다.
# 평창동계올림픽 레거시의 맞춤형 유지 방안은
강원도청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한국산업전략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연구한 결과,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 시설 중 도에서 관리해야 하는 7개 시설의 운영적자로 연간 101억3천100만원이 추산됐다.
경기장별로 분석해보면 정선 알파인경기장 적자가 가장 컸으며 연간 운영수익은 70억원이지만 운영비용은 106억8천200만원으로 예상돼 36억8천200만원의 적자를 내다보고 있다.
재활용 가능성도 있다. 개·폐회식장인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은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폐회식만 개최한 후 철거되는데, 프로축구 부천FC1995는 해당 스타디움 좌석을 구매해 축구전용경기장의 좌석으로 설치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부천구단이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축구전용경기장은 5천석 규모다.
현재 2부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부천구단은 2020년 1부리그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고 승격될 경우 전용경기장의 관람객 수를 1만석으로 늘린다는 구상이다.
부천구단은 5천석 전석을 올림픽스타디움의 좌석을 구매해 설치한다는 입장이다. 구단 관계자는 "아직 평창동계올림픽이 진행 중이라서 대회가 끝나면 협의를 해보려고 한다"며 "새 가변석을 사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적인 절감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입힌다는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된다"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부천구단 모두 상생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시설의 경우,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국가가 관리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용식 가톨릭관동대 경기지도학 교수는 "올림픽은 도시단위의 강원도가 주최했지만 실질적으로 국가적 행사였다. 국가가 올림픽을 통해 이미지 제고 등의 효과를 입었다"며 "국가는 과실만 따가서는 안된다. 88올림픽 이후 시설관리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평창올림픽에 대한 사후 관리도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하계 종목 위주로 구성된 스포츠 토토에 동계종목을 넣거나 경정·경륜법처럼 '경빙법'을 만든다면 수익 창출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한 수익 창출의 방법을 언급했다.
또 오는 2022년 중국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예정된 가운데, 평창이 세계 선수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온다. 88올림픽의 경우 한국 인근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아 사후활용 문제를 고민했어야 했던 반면, 평창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각국 선수들의 훈련장소로 쓰일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동계 아시아, 세계 선수권 등의 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평창동계올림픽 사후 방안과 관련해 아직은 결정된 것이 없다. 원칙적으로 강원도에서 시설관리 하는 것이 맞으나 강원도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추후 정부에서 보전할 시설과 없앨 시설을 가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강원도청 관계자는 "국가에서 사후관리에 나설 수 있도록 현재 권성동의원과 염동렬의원의 발의로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려고 한다"며 "현재는 개정안이 계류돼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박연신기자 julie@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강원도 제공·연합뉴스 /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