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市 대신 후원기업 직접 발굴
최초 민·관 장애인체육 실업팀 창단
선인중 동계체전 金 획득 밑거름 역할
선수 경력 아들 덕에 빙상종목과 인연
장애인 컬링 베이징선 인천도 노려볼만
인천엔 고교팀 없어 제도 뒷받침 절실
2015년 대한장애인체육회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맞춰 관련 종목 실업팀 창단 지원안을 발표했다. 지자체와 향후 3년 동안 실업팀 운영 예산을 1대1로 매칭 지원한다는 제안이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지어진 선학국제빙상경기장으로 인해 동계 종목 발전의 주춧돌이 놓인 상황이었지만,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인천시 입장에서는 이 제안을 수용하지 못했다.
이때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가 나서서 후원 기업 4곳을 찾았고, 이를 통해 전국 최초로 민간이 지원한 장애인체육 실업팀을 창단할 수 있었다.
#인천 선인중 컬링팀은 2017년 1월 25일 이천훈련원 컬링경기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 동계체육대회 컬링 남중부 결승에서 서울 신구중을 11-3으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 컬링 사상 처음으로 동계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선인중 컬링이 당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의미를 더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를 활용한 훈련을 통해 동계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데에는 인천시컬링경기연맹의 지원과 지도자들의 헌신적 지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지역 체육계는 분석했다.
인천 컬링사(史)를 새로 쓴 사건들이 몇 년 사이에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이율기(58)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 겸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 회장이 있었다.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어느 때보다 국내에서 컬링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이율기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26일 오후 선학국제빙상경기장 지하에 위치한 컬링경기장을 찾았다.
코멕스전자(주) 대표이기도 한 이 회장은 이날 오후 6시께 컬링장을 찾아 훈련 중인 지역 선수들을 챙기고, 경기장을 꼼꼼히 살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컬링 지원단장도 맡고 있는 터라 다음 달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앞두고 방한해 선학컬링장에서 훈련할 캐나다와 영국 등 해외 선수들을 위해 시장애인컬링협회 임원들과 경기장을 살핀 것이다.
문제가 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야 인터뷰를 위해 이 회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내 전날 막을 내린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화제를 옮겼다.
"지난 14일에 열린 우리 여자 선수들과 중국의 예선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봤습니다. 당시 경기에서 우리가 대승을 거뒀죠. 그리고 우리 승리에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은 우리 컬링 선수단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온 국민이 컬링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단다.
"2003년부터 한국초등학교 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았어요. 제가 연맹 회장으로 있을 당시 국내 초교 빙상 무대에 김연아, 이상화, 모태범을 비롯해 쇼트트랙의 곽윤기 등이 있었어요. 이 선수들이 성장해서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빙상 그랜드슬램(피겨,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 전 종목에서 금메달 획득)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김연아를 전담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 등과 기분 좋게 축하주를 나눴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가운데, 컬링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 국민의 스포츠로 부상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제가 맡으면 잘 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웃음)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으며, 기업가인 이 회장이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배경이 궁금했다.
이 회장은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빙상 종목 선수로 활동했다"면서 "동계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중학교 진학하면서 운동은 그만뒀고 그 인연으로 1997년에 인천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국초등학교 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 인천시컬링경기연맹에 이어 2015년부터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컬링 지원단장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최근 대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이천 훈련원을 찾아 개당 50만원에 달하는 욕창 방지 방석 5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며 격려했다.
동계패럴림픽까지 끝나면 지역 선수들에 지원을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국내 컬링 역사가 짧기 때문에 컬링을 경험한 사람들이 드물고, 그만큼 좋은 지도자가 많지 않다"면서 "현재 좋은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가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투입된 상황이기 때문에 대회 후 좋은 지도자를 찾아서 선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인천의 비장애인 선수가 태극마크 달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며, 장애인 컬링은 2022년 베이징 패릴림픽을 노려볼 만 하다고 분석했다.
"컬링은 네 선수의 고른 실력과 호흡이 중요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우리 선수들은 의성여중 재학 때부터 고교, 실업팀까지 12년 넘게 호흡을 맞춘 선수들입니다. 현재 선인중(남)과 석정중(여) 선수들이 훈련 중인데, 지역 고교에 컬링팀이 없기 때문에 이 선수들이 고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선수단 지원은 연맹에서 할 수 있는데, 교육 관계 기관의 제도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의성 마늘 소녀'가 나오긴 힘든 상황입니다. 장애인 팀의 경우는 좋은 지도자를 영입해 지역 실업팀 위주로 훈련을 한다면 다가올 올림픽에 나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 회장이 보는 컬링의 매력은 근력과 지구력 등 힘을 앞세운 여타 운동과 달리 전략 종목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서양에선 컬링을 '빙판 위 체스'로 칭하기도 한다.
"바둑, 당구, 볼링 등이 합쳐진 컬링은 한국 사람들에게 딱 맞는 종목이라고 생각됩니다. 힘을 쓰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노인과 장애인 등 온 가족이 모두 함께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종목도 컬링 뿐이지요.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눈으로 보는 컬링을 했지 몸으로 하는 컬링을 한 것은 아닙니다. 북유럽 현지에서 보면 선수들처럼 딜리버리 하지 않고 편하게 공 굴리듯이 딜리버리 합니다. 쉽게 접근하면 매우 쉬운 경기입니다. 앞으로 지역의 컬링 동호인 수를 늘려서 컬링의 저변을 넓히는데 더욱 힘을 쏟을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경북 청도 태생인 그는 대구 달성고와 건국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코리아 메카트로닉스를 설립했으며 2007년 코멕스전자(주)로 법인 전환 후 대표로 재임 중이다.
스포츠계에는 1997년 인천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에 부임하면서 첫 발을 디뎠다.
2003년에는 대한빙상경기연맹 산하 한국초등학교 빙상경기연맹 회장으로 부임했다.
12년 동안 연맹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2011년 인천시컬링경기연맹 회장과 2015년에 인천시장애인컬링협회 회장으로 취임해 인천지역 양대 컬링 단체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