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 있는 줄 몰랐던 괴짜같은 아이
매형이 알아 본 덕에 문하생으로…
물감 쏟아 엉망이 된 작품서 깨달아
헝클어짐 속에서 초월적인 美 발견
규칙 없이 본능에 충실… 본질 탐구
제목·설명 붙으면 그림에 한계 생겨
동서양 조화로운 작품 해외서 더 유명
추상은 일종의 '나'에 대한 진실찾기

어린 시절 '재능'을 묻기 위해 던진 질문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성근 화백은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다.
중학생 때부터 한국 근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당 김은호 선생에게 사사 받았고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이인데, 미술 낙제생이라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나는 좀 이상하게 보였을 거예요. 벽을 그리라 했는데, 하얀 벽이지만 검게 칠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파란 하늘인데, 빨갛게 그려버리고. 그저 느낀 그대로 표현한 건데, 선생님의 기준에서는 낙제지. 못 그린 그림."

지금 와서 보면 그는 '추상'적 감각을 타고 났을지 모른다. 이 화백은 사실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재능이 있는 줄도 몰랐단다. 그의 매형이 그림을 보고 재능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조금 독특한, 괴짜 아이였다.
"우리 매형이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침 매형이 우리 선생님(김은호)을 알고 있었는데, 나를 그곳에 보내 공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지금도 대단하시지만, 예전에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시험도 보고 들어가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험을 통과했더라고. 그때가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는데, 그렇게 매일 방학만 되면 선생님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대단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선생님은 손이 붓도록 그림을 그리셨다고 해요. 정말 엄청난 양의 노력을 하신 거지. 그 말을 듣고 너무 감명받아서,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싶어 정말로 열심히 그렸거든요. 그런데 나는 손이 붓질 않는거야. 진짜 많이 그림을 그렸는데도." 그래서일까. 스승은 어린 제자에 칭찬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 고생했다' 한마디 하지 않았고, 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선생님이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표하지 않으니까, 내가 재능이 있는 건 맞는지,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 집에 친구 분이 오셔서 내가 차 심부름을 하게 됐거든. 차를 가지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문 너머로 대화가 들리는 거야. '어린 놈이 그림을 잘 그린다. 내가 두고 보고 있는데, 아마 관심을 안 가지는 것 같이 보여 그 놈이 힘들 것이다'. 선생님의 그 말이 그때 참 용기가 되더라고." 그건 이당 김은호의 교육방식이었다.
'틀에 얽매이지 마라' "스승이지만, 그 틀에 묶이지 말라는 거예요. 선생님 말씀, 그 칭찬에 내가 묶이면 안되는 거지. 선생님은 손이 부었지만 나는 손이 붓지 않는 것도 그건 선생과 내가 다르기 때문이지. 스승의 틀에 묶인 나에서 벗어나라. 나는 나다. 이게 배움이에요. 그 시절 깨달음이고."
그때 얻은 깨달음은 지금의 이성근을 만든 지지대였다. 그는 그림보다 그림을 그린 이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미술가가 되길 원해요. '미(美)'를 이야기하는 사람. 궁극적인 미란 무엇인가를 많이 고민하는데, 우리는 보이는 것들의 미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요. 우리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그 틀을 깨고 나오면 한계가 사라지죠. 형식이고, 틀이고, 기준이고, 사실은 다 내가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것들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의 몫이구요."
예전에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예술가로서의 고집도 있었고, 자존심도 강했다. 화백은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도 있다고 술회했다.
"한번은 그림을 그리다 잘못해서 물감을 작품에 쏟은 적이 있었어요. 내가 구상한 것들이 쏟아진 물감으로 다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림을 버리려고 했어요. 그때 가만히 앉아 엉망이 된 그림을 보니, 헝클어진 그 속에서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보였어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 자체도 작품이었어요."
그는 그 순간 든 생각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림은 내 존재를 표현하는 소산인데, 내 생각과 철학, 인생이 아름답다면 그림은 자연히 아름다워지겠구나 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무엇이든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작업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그의 붓이 캔버스 위를 자유롭게 휘몰아친다. 누군가는 그것을 '쇼'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의 본능에 충실한 것 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순수하고, 허물이 없고, 자유분방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표현했지만 여느 현대미술 작품들 같지 않게 보는 이들에게 그 진심이 잘 전달된다.
"화가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목을 붙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화가가 그림을 설명해 버리면, 제목과 설명에 묶여서 관객의 느낌이 제한돼 버려요. 그림도 한계를 가지고요.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이 느낌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림이나, 보는 이들 모두 자유를 가져야 돼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게."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그이지만, 그래도 그를 대표하는 것은 '추상'이다.
그는 대중과 호흡하는 것이 좋아 작품 속에 추상만 고집하진 않는다. 구상적 요소도 함께 넣어 모두가 예술을 즐기도록 노력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먹이나 동양물감을 활용해 동서양이 조화된 오묘한 인상이 강하고, 강력하게 뻗어 나가는 강렬한 붓 터치가 특징이다.
이 매력 덕에 현대미술의 근거지인 서구에서 열렬한 러브콜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이미 미국 뉴욕 UN본부와 영국 왕실에 걸렸고,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선물로 그의 작품 '군마'가 보내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또한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선진 10개국에서 50여 회에 달하는 개인전 및 초대전을 열어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 정도 명성이라면, 조금 나태해지거나 쉴 법도 한데, 그는 붓을 놓지 않는다. 어디서든 그가 추구하는 '느낌'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보는 이들 입장에선, 추상이 많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이 궁극적으로 추상작품을 추구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진실찾기'이기 때문이에요. 나의 생각과 느낌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추상인데, 그것이 참 어렵고 힘든 과정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순수해지지 않거든요. 생각해보세요. 피카소, 칸딘스키와 같이 추상의 세계적 거장들 모두가 그림을 그려도, 5살 아이를 못 따라갑니다. 아이들은 정말로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든요. 제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그래서 항상 제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아요."
맑게 웃는 화백의 미소 안에 예술가의 진심이 묻어난다. 예술은 무엇인가.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서울 출생
▲제 6회 이당 미술상 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건국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오스트리아 빈 로이쉬 갤러리, 프랑스 파리 베가 마테 갤러리 및 파리 문화센터 등 유수 해외 갤러리 초대 개인전
▲대한민국 청와대, 미국 뉴욕 UN본부, 영국 왕실, 미국 국방부(펜타곤), 필리핀 말라까냥 대통령 궁, 파리 에리메스, 공동경비구역 귀빈실 등 국내외 16여 곳에서 그의 작품 소장 중.